한국일보

캔디와 작은 거인

2008-11-18 (화) 12:00:00
크게 작게

▶ 양민교 의사.리치몬드, VA

수는 새벽같이 눈을 떴다. 캔디가 수의 얼굴을 간지럽게 했기 때문이다. 캔디의 혀는 따뜻했다. 비행장 근처에는 겨울이 빨리 오는 것일까. 천막의 빈 틈새로 차가운 바람이 스며들었다. 누군가가 트럭에 시동을 걸었는지 으르렁 거리는 엔진 소리가 천막을 울린다. 캔디의 눈이 어둠속에서도 반짝였다.
선임하사의 불호령 소리가 요란하다. 수는 재빨리 방탄조끼에 소총을 잡았다. 그리고 캔디를 내려다 봤다. 캔디가 꼬리를 흔들고 수를 올려다봤다. 그렇지 매일 같이 지니고 가는 성경책을 잊은 것이다. 급히 사물함 위의 성경책을 위 포켓에 넣었다. 그리고 천막을 박차고 나섰다. 캔디가 작은 병사처럼 수를 재빨리 뒤따랐다.
수송 중대장 존 소령은 얼굴이 여명 속에서도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작전 목표와 상황을 빠른 속도로 지시했다. 00 시에 00 목표에 수송완료. 귀대 00시. 중형 트럭 5대와 경호 차량 4대에 보급품 내용은 비밀. 복병과 자폭적군 방지를 몇 번이나 당부했다. 수의 보조 운전자인 존 일병은 수에게 속삭이듯 “제기랄 원자탄이라도 싣고 가나, 레이션 박스라면 저놈들에게 아예 던져주고 전쟁을 멈추자고 하지.” 수는 어깨로 그를 쳤다. “살아오기만 기도해라, 일병.”
수는 5번째 트럭에 올랐다 캔디가 어느 틈에 잽싸게 올랐다. 존은 캔디를 보고 눈을 껌뻑거렸다. 어이없다는 듯이. “수, 너 이거 전쟁터가 너희 안방인줄 아니. 군법에… 나는 안 본 걸로 하지.” 트럭은 시동이 걸려 엄청난 소리를 내서 말을 흐리게 했다. 캔디는 차문과 수 사이로 정말 병사처럼 앞을 보며 정자세로 앉았다. 수송대는 차례로 어둠이 깔린 길을 큰 헤드라이트를 켜고 질주하기 시작했다.
한 시간 정도 지났을까. 존이 창에 헬멧을 부딪치며 졸았다. 수는 눈이 감겨올 때마다 캔디에게 말을 걸었다. 캔디는 차속에서 절대 졸지 않았다. 그리고 앞만 주시했다. 수는 캔디를 향해 얼굴을 돌려도 절대로 수를 바라보지 않았다. 그래서 수는 정색을 하고 운전에 집중했다. 이때 갑자기 앞서가던 트럭에 하얀 먼지가 덮이더니 빨간 섬광이 파란 빛과 함께 하늘로 솟았다. 캔디가 요란하게 짖어댔다. 수는 급히 오른쪽으로 핸들을 돌려 피했다. 그리고 의식을 잃었다.
몇 시간이 지났는지 수는 의식이 돌아왔다. 캔디의 따뜻한 혀가 수의 얼굴에 키스 하고 있었다. 희미하게 보이지만 육중한 바퀴가 수의 두 발을 누르고 있었고 몸은 점점 차가워오고 있었다. 아래로부터의 고통이 온몸을 바늘로 찌르는 듯 아파왔다. 존은 보이지 않았다. 수는 입을 열 수가 없었다. 밖에 인기척이 들리는 듯 캔디가 큰 소리로 짖어댔다. 그리고 다시 의식을 잃었다.
매쉬 병동에서 수가 의식을 회복하니 존이 웃으면서 수를 바라봤다. 그는 머리에 붕대를 감고 있었다. 수는 가느다란 목소리로 “캔디는?”하고 물었다. 존은 “이봐, 넌 다 죽은 거였어, 캔디가
너를 살렸지. 너는 내일 본국으로 후송돼. 캔디를 잊어야 해. 약속해, 캔디를 나에게 맡긴다고.” 존은 병실 문을 열었다. 캔디가 쏜살같이 수에게로 왔다. 수는 울음을 터트렸다.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