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이희정(주부)

2008-11-17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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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마운 도서관

지난 토요일 동네 도서관에서 북세일을 했다. 당연히 열 일 제치고 달려갔다. 아이들 책과 비디오는 개당 25센트. 어른들 페이퍼 북은 50센트, 하드커버는 1달러였다. 큰 아이를 위해 챕터북을 작은 아이를 위해 그림책과 비디오를 골라 담으니 고작 7불어치인데 가방이 한 가득 찬다. 작년에는 북세일인 줄도 모르고 끝무렵에 갔다가 커다란 그로서리 종이백에 양껏 채워 1불이라는 파격적인 떨이에 마구 흥분했던 기억이 난다. 아무튼 아닌 게 아니라 도서관 책 세일은 안 가면 손해 가면 횡재인 게 분명하다.

도서관 없었으면 어찌 살았을까, 싶게 나는 동네 도서관이 늘 고맙고 또 감사하다. 처음 미국에 갓 왔을 때는 일 없이 시간 때우느라 도서관을 많이도 다녔다. 그 시간 책을 열심히 읽었더라면 오늘날 나의 영어실력은 하늘을 찌르고 잡다한 지식들은 홍수를 이루었겠지만 말이다. 대신 비디오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빌려 봤었다. 그 시절 내게 유일무이한 취미가 되었던 비디오 영화감상. 무료로 그 많은 영화들을 볼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난 크나큰 은혜를 입은 거였는데, 아이를 낳고 보니 도서관은 그보다 더 많은 것들을 베풀어주는 곳이라는 걸 항상 깨닫는다.


아이들이 슬슬 기고 서기 시작할 무렵부터 유모차에 태워 도서관엘 갔다. 한창 뭐든지 입으로 맛보는 때라 책은 빌려오지 않았지만. 아이가 조금 크니 일 주일이면 두 세번씩 열리는 스토리 타임이 눈에 들어왔다. 입모아 열심히 대답하는 다른 꼬맹이들에 비해 유독 내 녀석들만 딴청부리는 듯해 지청구도 많이 했었다. 운전중에 틀어주는 Audio Story Book도, 잠자리에서 들려주는 Nursery Rhyme Song 도 다 도서관 표다. 아이가 조금 더 크니 종이접기, 연 만들기, 구슬꿰기, 쿠키 장식 등 Craft 시간에도 (드디어!) 참여할 수가 있게 되었다. 할로윈 게임이며 산타 할아버지 방문같은 시의적절한 이벤트는 기본이고, 근처 무용 학원생들의 솜씨 자랑, 스쿨밴드의 연주같은 공연은 물론이고, 동물원이나 박물관같은 특별초청 행사도 간간이 섞여 무료할 틈이 없었다. 특히나 여름이면 방학과 함께 Reading Program을 시작해서 책 읽는 아이들에게 선물도 푸짐하게 안겨준다.

도서관이 아이들에게만 즐거운 곳이냐하면 천만의 말씀. 비록 영어는 젬병이라 활자물은 기피하고 있지만 영화보기는 여전한 나의 즐거움이다. 언제부턴가 Foreign Language 코너에 한국 책이 보이기 시작했다. 비록 종류가 다양하지도 분량이 많지도 않지만 거기에 존재한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웠다. 다만 유리병 속의 쿠키처럼 바닥이 뻔히 보이는지라 아껴먹듯 한 권씩 한 권씩 빌려다 보고 있지만.

한국 갔을 때, 집 근처 도서관에 갔었다. 애들한테 많이 읽어줘야지, 하는 부푼 희망으로 갔다가 ‘대출권수 3권’이라는 말에 꽈당했다. 도서 대출에 대한 내 질문에 “unlimited”라고 대답하던 이 곳 도서관원 말이 오버랩되었다. 물론 이해는 간다. 한국의 동화책은 대부분이 하드 커버라 몇 권만 챙겨도 금새 무거워지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도보나 대중교통을 이용해 도서관에 가기 때문에 어차피 낑낑대며 많은 양을 빌려가고 싶어하진 않을 꺼라는, 나만의 미루어 짐작하기. 그래도 세권은 너무 인색하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소란스럽게 책을 읽어주고 읽어대는 이 곳과 ‘도서관 안에서는 조용히’라고 써붙인 그 곳, 필요없는 책은 이 쪽 카트에 넣어 주세요 하는 이곳과 ‘다 본 책은 제자리에’라고 써붙인 그 곳. 뭐 굳이 비교를 하겠다거나 비판을 하려는 의도는 아니지만, 우리나라도 조금만 더 자유롭게 책 읽는 분위기를 만들어주면 좋지 않을까.

도서관이나 서점을 내 집 서가처럼 맘대로 이용할 수 있다면, 색색가지 구색갖춘 최신 전집 장만에 안달복달하는 한국 엄마들도 분명 줄어들텐데. 하기사 책 값이 워낙 높은 미국이니 도서관이나 서점 문턱이라도 낮아야겠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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