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터키 성지순례 <하,끝>

2008-11-14 (금)
크게 작게
터키 성지순례 <하,끝>

에게해 연안에 위치한 고대도시 에페스.

터키 성지순례 <하,끝>

터키에서 세번째로 큰 도시 이즈밀. 현대와 고대를 모두 품고 있다.

순례자들 압도하는 유적의 땅 에베소

원형극장·셀수스 도서관·공중 목욕탕 등


일곱째의 마지막 날에는 아시아 일곱 교회 중 주님의 첫 사랑을 잃었다는 에베소 교회와 터키에서 세번째로 큰 도시 이즈밀(Izmir)에 위치한 폴리 갑 순교기념 교회라고도 하는 서머나 교회를 답사 했다. 이 답사를 위해서 먼저 도착한 곳이 지금 셀주크라고도 불리는 에게해 연안에 위치한 고대도시 에페스(에베소)였다. 이 도시의 광대한 규모와 위용에 압도당한 순례자들에게 수많은 유적지가 기다리고 있었다.



사도 요한의 무덤이 있는 성채, 인구 2만5,000명을 수용할 수 있는 원형극장, 로마 총독이었던 이우라우스 이킬라가 역시 로마 총독이었던 자신의 아버지 셀수스를 기념하기 위해 지은 거대한 셀수스 도서관, 당시 정부 차원에서 교역이 행해지던 정부 아고라, 목욕탕, 공중화장실, 한 없이 아름답고 우아하지만 위엄을 잃지 않고 있는 아르테미스(아테미) 여신상 등 등 그 이름도 다 욀 수 없는 유적지로 머리속은 온통 뒤죽박죽이 되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역사적으로 많은 민족과 문화가 이곳을 지나갔고 기원전 546년에는 페르시아가 이 땅을 점령했으며 기원전 479년 후에는 마케도니아 알렉산더 대왕이, 그리고 기원후에는 로마 통치를 받게 되었다는 것과 사도 바울에 의해서 기독교가 처음으로 이 도시에 전파되었고 또 사도 요한의 활동 중심지였다는 사실이다.

어느덧 8박9일을 보내는 동안에 하느님이 최초의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에덴동산이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터키, 노아의 방주가 머물렀으며 그 잔해가 남아있는 아라랏산이 있는 곳, 사도 바울의 1, 2차 전도지, 요한 계시록의 소아시아 7 교회가 있는 성지를 다 둘러보게 되었다. 그리고 내 교회는 아니지만 주 안에서 형제자매가 되어 여러 날을 같이 지나게 되었던 사랑하는 성도님들, 특히 내 동생 내외와 같은 룸메이트로 고락을 같이 했던 우리 사돈, 또 나의 대학 동창인 친구 등, 35명의 정든 식구들과 헤어져야 하는 터키성지 순례를 모두 마쳤다.

그러나 여행하는 동안 나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 생각은 어찌하여 사도 바울의 전도지이며 사도 요한의 활동의 중심지였던 이곳, 또 일곱 교회가 버젓이 세워졌던 이 땅이 어찌하여 지금은 90% 이상의 이슬람교인으로 꽉 차버린 지역으로 바뀌어 버렸는가 하는 사실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2,000여년 동안의 역사의 흐름과 그 공백이 너무 안타깝고 슬플 뿐이다. 하지만 이번 터키 여행에서 빼 놓을수 없는 가장 인상적인 것은 터키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라고 할 수 있다. 가이드의 애절한 호소도 있었지만, 실제로 여러 가지 자료를 찾아보니 터키와 우리나라가 형제의 나라라는 이유가 있었다.

같은 우랄알타이 계통이었던 고구려와 돌궐(투르크)은 동맹을 맺어 가까이 지낸 사이였는데 돌궐이 위구르에 멸망한 후 남아 있던 이들이 서방으로 이동하여 결국 후에 오스만투르크(터키) 제국을 건설하게 된다. 오스만 터키 제국을 건설한 그들은 자기들의 역사를 아주 자랑스럽게 여겼고, 그들의 역사책은 돌궐 시절의 우방국 고구려에 대한 설명이 상세한 편이여서 고구려의 후예인 한국을 사랑하게 된 것이다.

터키가 6전쟁 때에 16개국의 파병 중 미국 다음으로 많이 파병한 (1만5,000명 파병,770명 사망) 나라이었던 것도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그런데 한국은 우리의 역사책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그들처럼 돌궐에 대한 기억과 사랑을 키우지 못했던 것 같다.
여기에 얽힌 하나의 에피소드가 참 재미있다.

88 서울 올림픽 때에 터키의 한 고위층 관계자가 한국을 방문했다. 자신을 터키인이라 소개하면 큰 환영을 받을 줄 알았던 그는 의외의 시큰둥한 반응을 나타낸 한국에 대해 크게 실망하고 돌아가 신문에 기고하기를 ‘이제 짝사랑을 그만 둡시다’라는 글을 썼다고 한다.


한국과 터키의 이러한 어색한 기류가 참 멋있게 반전된 것은 지난 2002년 월드컵 축구 경기였다. 터키 유학생들이 터키인들의 따뜻한 한국 사랑을 소개하자 “한국과 터키는 형제의 나라, 터키를 응원하자”라는 내용의 글이 인터넷을 타고 여기저기 퍼져나갔고 결국 터키와 3, 4위전 때 자국에서 조차 본 적이 없는 대형 터키 국기가 관중석에 펼쳐지는 순간 TV로 경기를 지켜보던 수많은 터키인들이 감동의 눈물을 흘렸고 경기는 한국 선수들과 터키 선수들의 어깨동무로 끝나면서 양국의 사랑을 확인시켜 주는 장면이 펼쳐졌다는 이야기이다.

여행에서 돌아와 생을 다시 보내면서 ‘터키의 한국사랑’에 대해 얼마나 생각했던지 그 나라가 도무지 나의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이경희 <교육가·수필가>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