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고 짧음은 호흡이요, 장단이다.
우리는 편안하게 숨을 쉴 때 들숨은 길게, 날숨은 짧게 구음(口音)으로 “하나 두우-ㄹ 셋” 의 3분 박으로 느낄 수 있을 것 이다. 이것이 장단의 개념이라 볼 수 있다. 그리고 우리 춤의 동작은 이러한 장단에 기초하여 이루어 진다. 이러한 장단 내에서의 호흡법, 즉 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멈추는 들숨, 날숨, 정지의 끊임 없는 호흡의 전환은 춤의 기교에 다양하게 응용 된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음양의 조화를 보면 음은 땅, 양은 하늘이며 모성적 본능이자 부성적 본능이다. 음의 모성본능은 감싸는 기운을 가지고 있고, 양의 부성본능은 강한 상승 기운을 가지고 있다. 이것을 춤사위로 보면 대삼(大衫) 소삼(小衫) 이요, 들숨 날숨이며 장단에서 는 강약과 같은 것 이다. 한 장단 속에는 밀고 당기고 풀어서 맺음이 있고, 한 박 한 박 역할이 있기에 각자의 위치에서 넘침이 있어선 아니 된다. 즉 예(禮) 에 벗어남이 없어야 한다. 첫 박은 ‘합’ 이라는 박으로 기초요, 일어남 이고 임금의 자리라 하여 두드림의 강약도 모든 박이 첫 박 보다 커서는 안 된다.
그러면 강박이라 하여 그 강도는 어느 정도며 약 박이라 하면 어느 정도 약하게 해야 하는 가? 중용(中庸)을 택하면 될 것이라 했다. 우리의 전통음악과 무용의 용어에 있어서도 “락이불류(樂而不流), 요 애이불비(哀而不悲)” 라는 말이 있다. 그 뜻은 기쁘다고 방탕해선 안되고 슬프다고 도탄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기본음 높이가 올라가고 악곡의 템포가 빨라 지면 힘들고 어려운 시대의 음악이라 하여 경계 하여야 한다고 하였고 한 왕조가 바뀌면 음악제도의 정비가 뒤 따르곤 하였다. 이렇듯 엄격한 규정이 내재되어 있으면서도 겉으로는 별로 다름을 느낄 수 없는 것이 전통 한국음악이며 우리의 전통 춤이다.
내가 미국에서 공연이 끝난 후 외국 관객들에게 가장 많이 받는 질문 중 하나가 우리 한국 춤의 흐름 과 동작의 박자에 대한 것이다. 이것은 아마도 우리나라 음악이나 춤이, 끊어질 듯 다시 이어지는 끊임없는 곡선의 연결을 말하는 부분인 것 같다. 이러한 곡선의 연결은 물 흐르듯 그리고 멀리 보이는 한국의 산등성이의 선, 한복의 소맷자락의 선, 버선발의 선, 기와지붕의 선 같은 자연스러움 속에서 나온 것이다.
몸에 꼭 맞춰 조이는듯한 세밀함 보다는 약간의 접힘이 있더라도 그냥 그대로 흐르게 입는 한복의 맵시 같이...
이러한 내면의 깊이를 파악하기 까지는 무르 익어야 함의 과정을 따라야 한다. 그저 두드리면 될 것 같은 장구 연주법도 “구궁 삼 년에 기덕 삼 년”이라 했던가...
이것은 ‘구궁’ 이라는 기교 하나를 익히는데 삼 년이 걸린다는 의미로 ‘기덕’이라는 세월을 합하면 도합 기본 육 년은 해야 어디다 명함을 내밀 수 있다는 말이다. 요즈음 처음 하루 하루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해 가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 아이들은 감히 이해 할 수 도 없고 이해 하려고 하지도 않을 것이다.
두어서넛과 예닐곱이라는 셈법이 통하는 우리 민족의 정서는 우리 장단에서도 엿 볼 수 있다. 굿거리 장단이라 불리는 박자가 있는데 분 박으로 따지면 12박이요, 좀더 넓게 보면 4박이고, 크게 보면 1장단으로 볼 수 있다. 12라는 숫자와 4라는 숫자는 엄청나게 다른데 어떻게 하나로 볼 수 있겠는가? 바로 예닐곱의 융통성에 따른 우리 의 소통이라 생각된다. 이렇듯 분명치 않은 듯 하지만 내면에 잠재된 규범과 규칙은 매우 엄격하다.
우리 만의 소통.
오늘날 세계화의 흐름에는 사뭇 역행 하는 듯 하나 두어서넛의 셈법, 4가 12도 될 수 있는 융통성, 이 융통성으로 우리의 든든한 자리매김을 해야 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