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신없이 아이들을 학교에 데려다주고 아침 밥상머리에 앉아 느긋하게 입가심 차 한잔을 하고 있는데 옆집 언니로부터 전화가 왔다. (말이 옆 집이지 차 타고 10분)
“혹시 xx가게의 가습기 광고 봤어? 10불이래. 너무 싸지 않아?” (평소 세일정보를 악착같이 나누는 사이) “그래요? 싸긴 싸네. 근데 난 가습기는 오래전에 포기했쟎아.”
가습기.
예전에 하나 있었다. 첫 아이 낳을 즈음 출산 준비물 속에 끼어있던 물건이라 큰 맘먹고 장만했었다. 일주일마다 청소해대느라 남편이랑 말다툼도 꽤나 했었다. 겨울마다 애물단지로 전락하더니 몇 년 뒤 결국 도네이션 트럭에 실려갔다. 결코 완벽하게 청소할 수 없는 가습기에서 쉬익쉬익 뿜어져나오는 세균을 밤마다 들이켜는 기분 때문이었다. 그 뒤론 가습기의 유혹에 절대 안 넘어간다. 그 대신 하나이던 우리 집의 빨랫대는 세 개로 늘었다. (집이 크냐 물으신다면 할 말이 없다) 아이들 방에 하나, 어른 방에 하나, 뒤꼍에 하나.
빨래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미국생활을 시작할 때 낯설었던 모습 중의 하나가 바구니 가득 옷가지를 싣고 왔다갔다 하는 것이었다. 그 때 가장 부러웠던 게 세탁기를 집 안에 끼고있는 아파트였다. 작은 베란다 한 켠에 뺄래를 널어 말리다가 DO NOT HANG ANY LAUNDURY ON THE BALCONY 항목에 빨간 줄 쫙 그어진 경고장을 받기도 했던 그 아파트 생활. 자기들이 햇볕까지 세 놨어? 내 집만 가져봐라, 이게 얼마나 친환경적인 행위인데 고작 볼썽 사나운 게 문제야? 하면서 씩씩댔던 그 날들.
몇 년이 흐른 지금, 그 때 나의 간절한 바람은 세탁기를 집 안에 들여놓고 시도 때도 없이 빨래를 해 대는 쾌거로 이어졌지만 가끔은 그 공동 세탁실의 풍경이 그립다. 옛날옛적 동네 빨래터에 모인 아낙들의 수다스러움만은 못하겠지만, 가끔 이웃들과 나누는 정겨운 안부 인사는 물론이고 무빙 세일해요 부터 베이베 시터 구합니다, 잃어버린 강아지 찾아요 까지 게시판에 나붙은 갖가지 정보들까지 덤으로 얻곤 했던 그 세탁실 말이다. 비록 낯선 빨래방에서 운명적인 사랑을 조우하는 따위의 영화같은 장면 대신, 세탁기나 건조기 벽면에 패대기쳐진 주인없는 양말짝이나 속옷 자락을 낚아 올려야하는 불유쾌한 경험과 더 자주 마주쳐야 했지만.
어릴 적 작고 낡은 연립주택에 살 때, 엄만 종종 하얀 이불 홑청을 빨아 공동으로 쓰는 옥상에 널곤 하셨다. 중간 버팀목으로 서 있던 그 긴 장대는 아무리 바람이 불어대도 대못 하나에 질긴 빨랫줄을 감고는 신기하게도 쓰러지는 법이 없었다. 그 빨랫줄에서 펄러덕 춤추던 그 하얀 홑청에서는 풀을 먹인 뒤에도 계속 햇볕 냄새가 났다.
유난히도 강한 캘리포니아의 햇볕에, 뽀송뽀송 마르다 못해 뻣뻣하게 비틀어진 그 감촉을, 어떤 이들은 참 싫어한다. 그래서 젖은 빨래를 건조기에 넣고 향기로운 냄새까지 버무려 한 시간이고 두 시간이고 요리를 한다. 하지만 난 그 거칠고 억센 질감이 되려 흐뭇하기까지 하다. 나른한 햇볕 냄새가 나는 그 빨래가 좋아 오늘도 열심히 빨래를 해서 안 방 건넌 방 뒤꼍에 골고루 넌다. (물론 마당에 널 때는 여전히 조금쯤 눈치를 보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