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교단일기 / 천경주

2008-11-07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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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말 배우기

“아나, 여기 비루 두나 도.”
세상에 어렵다는 자리, 그 중에서도 둘째가라하면 서러울, 처음으로 시부모님 되실 분과 만나 인사드리는 자리에서 시아버님께서 하신 말씀이다. 식당 종업원에게 하신 이 말씀이 음절로 조각조각 나뉘어 식사하는 내내 머릿속을 뱅뱅 돌았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이지? 아니, 어느 나라 말이야?’
20년이 다된 기억이지만 그 당시에는 하도 놀라서 여전히 내 기억에 생생하다.

요즘이야 티비를 켜면 경상도, 전라도, 제주도, 심지어는 북한 사투리까지 접할 기회가 많고 굳이 그 지방 출신이 아니더라도 한두 마디쯤은 쉽게 흉내 낼 수 있지만 당시는 타관 결혼이라 하면 다들 한번쯤 다시 생각해 보라는 충고들을 건네는, 소위‘호랑이 담배 필 적’이었다.

평소 말이 빠르지 않고 고등학교 때에 방송부에 있었다는 이유로 그런대로 순화된 경상도식 표준어를 구사하던 지금의 남편 도움으로 간신히 시부모님 되실 분들과 대화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내게는 모두 비슷한 음성과 같은 억양으로 들리는데다가 질문을 하는 의문문인지 마침표가 붙은 평서문인지 조차 구분할 수 없을 정도였다.

그날 이후 가끔 안부 전화를 드리거나 서울에 오시게 되어 인사를 드리러 갈 때마다 매번 알아듣지 못해 허둥대고 두세 번 말씀을 하시게 하거나 아니면 확인 차 다시 여쭈는 등 연세 드신 분들께 여러 가지로 번거롭게 해드리는 것 같아 진심으로 무슨 방법을 강구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러던 중에 학교 선배가 던진 한마디는 그야말로 내게는‘구원’이었다. 종로에 어학 교재 파는 곳에 가면 경상도 사투리 테이프와 책이 있으니 사서 공부해보라는 것이었다. 당시 종로 역 근처에는 외국어 학원과 어학사들이 즐비해서 오며가며 영어, 일어 등 외국어 교재와 각종 시험서 들이 진열되어 있는 것을 본 적이 있었다. 종로로 가는 버스 안에서 이제는 시댁 식구들과 자유롭게 이야기를 할 수 있겠구나하는 기대로 잔뜩 부풀어 있었다. 규모가 가장 크고 보기에도 가장 많은 테이프와 책들을 진열해 놓은 가게로 보무도 당당하게 들어가 큰소리로
“여기 경상도 사투리 공부 할 수 있는 테이프랑 책 있죠? 그거 주세요.”
그 때 그 주인아저씨의 표정이라니. 아니 옆에 있던 사람들의 반응, 아! 난 그 때서야 눈치를 챘다. 너무 부끄러워 뭐라고 뒷수습을 하고 가게를 나왔는지 기억이 없다. 그리고 그 후 내게 거짓말을 했던 선배는 한동안 나를 피해 다녀야 했었다.

지금도 가끔 경상도 사투리 교재를 사러 갔던 때를 생각하면 웃음이 저절로 난다. 한마디도 못 알아듣는다는 것에 놀라서이기도 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서로 의사소통이 원활히 되었으면 하는 간절함이 나름 필사적이었던 것 같다. 말을 배운다는 것은 의사소통에 대한 간절함에서 시작한다. 상대방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고 상대방에게 나를 이해시키지 못하는 것처럼 답답한 일이 어디 있을까. 결혼 후 남편을 따라 미국에 와서는 더욱 막막했다. 내게는 경상도 말도 영어도 새로운 환경에서 생존(?)을 위해 공부하기 시작하게 되었다. 이렇듯 필사적이니 열심히 공부하게 되고 말이 느는 속도도 빨라졌다. 말은 두려움 반 호기심 반으로 배울 때 가장 잘 느나보다.

한국학교에서도 한국말에 대한 강한 필요성을 느끼는 학생들이 역시나 배움에 있어 빠를 수밖에 없다. 그런 학생일수록 한국어를 왜 배워야 하는 지 스스로가 이미 잘 알기 때문에 선생님들의 수업에 열심히 귀를 기울이고 수업 준비와 과제물도 잊지 않고 잘 챙긴다. 그 동기가 무엇이든 어떤 이유에서건 마음이 간절하면 간절한 만큼 학습의 결과는 눈에 띄게 다르게 나타난다. 어떻게 하면 내가 종로에서 경상도 말 테이프를 찾던 그 간절함을 우리 학생들이 갖게 할 수 있을까 열심히 궁리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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