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창 / 정혜란(한국무용가)

2008-11-06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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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춤, 몸짓의 序言 (서언)

춤추는 이의 하나인 나는 첫 원고를 쓰며 많은 생각에 고민하였다.
인생이란? 물음에 답변할 수 있는 나이도 아니고, 사람의 심금을 두드릴 수 있는 메끄러운 글 솜씨가 있는 것도 아니고, 괜스레 독자들께 누를 끼치지나 않을까...

그렇게 많은 고민 끝에 그래 내가 어릴때 부터 지금까지, 그리고 나의 지금 까지의 삶 속에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춤에 관한 이야기를 적어보자 라는 마음으로 서두를 잡았다. 40년 이상을 춤과 함께 살아온 나는 어쩌면 외골수의 삶일 수도 있겠으나, 춤으로 다져진 신체적 운동신경에 대한 자신감, 또 중년의 나이가 넘도록 나의 달란트를 많은 사람과 함께 공유할 수 있는 것, 이것 또한 오랜 세월 고수 해온 나의 재산이 아닌가 싶다.

앞으로 부족한 글이지만 3개월간 한국일보 여성의창에 연재될 나의 글은 한국 무용사를 중심으로 독자들에게 우리 몸짓의 의미를 전달하고 한국춤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히는 동행자가 되고자 한다.


우리의 몸짓은 삶의 기본이요 생명이다. 태동에서부터 시작된 인간의 몸 놀림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 의식적인 몸 놀림, 무의식적인 몸 놀림, 본능정인 몸 놀림, 이성적인 몸 놀림, 이렇듯 여러 가지의 몸 놀림 중 인간의 내면 혹은 현실적인 상황들을 재 구성하여 표현되는 몸짓이 바로 춤을 창조하고, 그 잠재성을 개발 시키는 데 꼭 필요한 과정 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삶이 현대의 문명사회로 발전 되면서 복잡해 진 것 과 같이 이러한 복잡 함을 표현하고자 하는 몸짓 또한 많은 변화가 이루어져 왔다. 서양의 몸짓이든 아프리카의 몸짓이든 우리 한 민족의 몸짓이든 공통적인 현상 일 것임에 이의가 없을 것이다.

한국춤, 우리 몸짓의 역사적인 변천사는 우리나라 고대사가 그러하듯이 그 기록이 매우 영세(零細)하여 실체를 파악 하기 어렵다. 중국의 사서에 미약하게 나타나는 설명에 의하면, 온 마을 사람들이 한데 모여 음식과 술을 빚어놓고 풍작에 감사하고 병마에 안위를 빌며 삼일 밤낮을 쉬지 않고 수십명이 일제히 장단에 맞추어 춤을 추었다 한다. 이것이 한민족 부족국가 시대의 제천의식인 고구려의 동맹이요 부여의 영고, 동예의 무천, 마한의 신풍제이다. 이 축제에서 사람들은 서로 손을 잡고 한데 어우러져 춤을 출 때 감흥과 감격을 느꼈고 또한 춤의 황홀경 속에서 절대자를 맞는 기쁨을 가졌으며 부족을 단결시키고 신비로운 친화력을 느낄 수 있었다. 이때의 가무 형태는 각자의 바램을 기원하는 자유롭고도 소박한 몸놀림이며 다른 사람에게 보이고 즐겁게 하기 위한 것은 아니었다.

내가 해마다 참가하고 있는 다민족 민속문화 축제인 San Francisco Ethnic Dance Festival의 경우, 본 공연이 끝난후 150여명 가량의 타민족 예술가들이 한 무대에서 관객에게 마지막 인사를 한 후 빠른 타악 비트에 마추어 각자의 춤을 마음껏 춘다. 여기서 추어지는 춤은 가장 자연스러운 몸짓에서 나오는 것이며 비록 피부색깔, 언어, 문화가 다르더라도 이 순간만큼은 한 마음으로 서로 가슴 속 밑바닥에 있는 감정을 공유하며 한가족으로 춤을 춘다. 이때에 만끽하는 짜릿한 느낌은 내가 한국에서 왕성한 활동을 할때도 감히 느껴 보지 못했던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아주 값진 경험이다.

이렇듯 소박한 몸놀림으로 가무를 즐겼던 심성은 오늘까지 연연히 이어져 한민족 춤의 원초적인 시발점이 되었으며 오늘 우리 민족의 문화 경쟁력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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