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 / 김지연(주부)
2008-11-05 (수) 12:00:00
우리 가족이 캘리포니아에 온 것은 1996년, 12년전이다. 이사온 지 얼마 되지 않아서 부터 ‘여성의 창’칼럼에 글 좀 쓰라는 강권을 받으면서 매번“나중에요…”하며 사양해온 말빚을 이제야 갚게 되는가 보다.
12년이라는 세월이 짧지 않건만 나의 생활이 너무 단순해서인지, 그저 당시 초등학교 4학년이던 아들이 지금은 대학교 4학년이고 당시 초등학교 1학년이던 딸이 지금은 대학 1학년생이라는 변화 이외에는 무슨 특별한 이야깃거리가 없는 것이 나의 솔직한 심정이다. 그럼에도 앞으로 열두차례 글을 쓰기로 한 것은 독자들 중 나와 같이 주부로 살며 이 땅에서 자녀 교육 잘 시키고 건강한 가정을 이루어 가는데 혼신의 노력을 다하며 열심히 살아가는 분들이 많으리라 생각되어 이미 경험하신 분들께는 옛 기억을 되살리는 시간이 되고 아직 어린 자녀를 두신 분들께는 먼저 경험한 사람의 이야기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하여서이다.
올 가을 둘째가 대학 신입생으로 기숙사에 들어가고 나니 정말 이제는 남편과 나 두 사람이 사는 가정이 되었다. 이른 아침의 분주함도 없고 하교시간 무렵의 학교 앞 긴 차량 행렬도 더 이상 나에겐 해당사항이 아닌, 그리고 방과후 여러 활동에 맞춰 운전수와 비서 역할을 감당하는 것도 이젠 나의 몫이 아닌 진정한 자유. 24시간이 온전히 나의 것이 된 것이다. 한 달 두 달 시간이 지나며 두 사람이 사는 환경에 익숙해져가고 생활은 단순해져간다. 그 단순함이 홀가분해 혼자 미소짓기도 하는데 시간이 흐르며 서서히 마음 한켠에 왠지 나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명예퇴직당한 사오정 기분이 드는 것을 피할 수가 없다. 그럴 때 받은 “엄마, 오늘은 어떻게 지내셨어요?” 묻는 아들의 안부전화에 다시금 나의 위치를 재정비하게 된다.
오랜 옛날 내가 초등학교 1학년때, 담임선생님께서 한 학생씩 돌아가며 커서 무엇이 되고 싶은지 묻는 질문에 나는 ‘엄마가 되겠다’고 답했다고 한다. 참으로 모두가 엉뚱하다 생각한 그때의 그 대답이 내겐 마치 어떤 계시처럼 느껴져 가볍게 여길 수 없었던 것이 사실이다. 대학 졸업후 잡지사 기자로 나름대로 경력을 쌓아가던 중 유학생의 아내로 미국에 와 두 아이를 낳고 기르며 자연히 엄마로서의 역할이 나의 본업이 되었다. 그런데 아이들이 커가며 엄마 노릇 제대로 하는 것이 정말 어느 직업인 못지 않음을 절감하게 되었고, 퇴근도 없고 휴가도 없고 하루 24시간 일년 365일 근무하는 엄마라는 직업을 잘 감당하려면 투철한 사명감과 함께 그 자리를 스스로 영예롭게 생각하며 즐겨야 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창조주께서 내게 맡기신 자녀를 건강하고 세상에 이로움을 끼치는 기업으로 성장시키는 것이 소명이라는 마음가짐으로...
가정이라는 한 기업이 이제는 모기업인 가정의 울타리를 벗어나 미국내 여러 지역으로 지사망을 넓혀가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그 기업 총수의 자리로 나 자신을 승격시키며 각 기업들이 스스로 잘 운영해가도록 기도로 돕고 필요할 때 자문역을 담당하는 것이 나의 위치임을 발견해가는 요즈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