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 / 김희숙(전 방송인)
2008-11-04 (화) 12:00:00
계절이 바뀌었단 느낌이 이젠 완연하게 다가옵니다. 눈을 들어 창밖을 보면 금방 알 수 있는 것이 일단 공기와 바람이 달라졌다는 겁니다. 벌써부터 가을로 들어섰음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여름의 더위가 다시 침범한 듯 반소매를 찾아야 했었는데, 이젠 아침결엔 코끝이 싸아할만큼 청결한 공기가 심장을 청소해 내는 기분이 들 정도입니다. 한낮의 햇살을 또 어떻습니까. 초록에서 노랑과 갈색, 그리고 빨강색으로 물들어가는 나뭇 잎사귀 틈바구니를 뚫고 금가루를 흩뿌리듯 퍼지는 진한 햇살을 몸과 마음에 느끼고 있노라면 금방 얼굴에 미소가 피어나는 걸요. 늦가을의 정취가 사방에서 묻어나는, 바야흐로 가을이 익는 냄새가 모락모락 피어나는 거지요.
11월입니다. 한 해를 시작하며 세웠던 계획과 결심들을 다시 돌아보며 얼만큼의 성과를 거두었는 지를 헤아려보는 시기라는군요. 더불어 크건 작건 간에 감사가 우리 마음 속에 일어나는 계절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생각컨대 삶 속에 회한이 어찌 없겠습니까. 금융위기, 경제적 압박이 실제 생활 속에 고스란히 드러나고 있는 요즘 상황에는 더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높아진 실업률에 주택경기가 바닥을 치고 있단 소식을 접하면 가슴에 돌덩이가 내려 앉는 듯 무겁습니다. 드러내놓고 말하지 않아도 평소보다 말이 적거나 유난히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주위 사람들을 보면 내심 안타깝고 속이 아파옵니다. 그래서 조그만 일에도 상처를 주고 받게 될까 염려되어 말과 행동에 조심스러워 지고,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그 화를 무심코 쏟아낼까 여간 신경이 쓰이는 게 아니랍니다. 지난 할로윈의 커다란 호박들을 기억하시는지요. 누런 볏 짚단들 사이에 풍성하게 놓여진 호박을 사다가 이리저리 칼집 모양을 내어 집 앞에 늘어놓은 걸 보았는데, 그 얼굴 표정이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입꼬리가 잔뜩 올라간 웃는 표정이고 다른 하나는 무섭게 눈과 입을 비튼 성난 표정이었는데, 내겐 조금은 모자란 듯 보이는 이빨이 듬성진 웃는 호박이 더 눈에 들어왔습니다.
좋은 생각은 불러 들이고 나쁜 생각은 거둬내기를 힘쓰라고 합니다. 말처럼 쉽진 않은걸 잘 알지만 그래도 올 한 해의 마지막을 잘 거두려면 지금이라도 내심 잘 다잡아야겠단 의지를 세워봅니다. 작은 기쁨을 큰 기쁨으로 만들어가는 것이 참 행복이라 하던데요. 갑자기 키가 쑤욱 자라는 것 같진 않아도 매일 조금씩 쉬지 않고 자라고 있는 아이들을 보면, 세상의 한 모퉁이에서 열심으로 살고 있는 인생의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합니다. 사실 건강하게 이 가을을 느낄 수 있음만 가지고도 어쩌면 감사할 수 있지 않을까요. 어떻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