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 신미하(직장인)

2008-10-15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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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척 보면 압니까?

퇴근해서 집안으로 들어오는데 웬일인지 큰 아들놈이 나를 반긴다. 대학생이 되더니 일을 한다 학교를 다닌다 하도 바쁘게 돌아가 얼굴 마주칠 새도 없는 녀석이, 마주쳐도 ‘하이! 엄마~’ 정도 아니면 묻는 말에나 겨우 대답하는 녀석이, 오늘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해맑은 얼굴로 웃으며 나를 반긴다. 때를 놓칠새라 나도 미소로 화답하며 “학교 잘 갖다 왔어? 배고프지?”하는데 녀석의 양손이 자기의 두 귀를 가리키고 있다.

‘헉!’

귀를 뚫었다.
열여덟이 되면 ‘너 하고 싶은대로 하라’고 내가 그랬단다. 놀라는 나를 보며 묻는다. “엄마 이상해?”, “아이고 이눔아 이상한게 문제야?...”하고 냅다 왜 그것이 나쁜 짓인지를 말하고 싶은데 딱히 생각나는 말이 없다.


순식간에 머리속이 복잡해 진다. 어떻게 지혜롭게 대답해주나… 이미 뚫어 버린 귀를 다시 메꾸랄 수도 없고, 그렇다고 ‘네 한짓은 몹쓸 짓이므로 너는 나쁜 놈’이라고 하려면 뭔가 그럴 만한 이유를 대야 하는데…. 도무지 생각나지 않는다. 나쁘긴 나쁜 것 같은데…. 음…
가까스로 생각해낸 대답이 “선입견이란게 있잖아, 너는 그런 아이가 아닌데 너를 모르는 어른들이 너를 나쁜 아이로 볼 수도 있다구… 아무리 개성이 좋구,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하는게 뭐가 문제냐고 말해도, 세상은 아직 선입견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일이 많잖아. 남자 아이가 자기가 좋다고 해서 치마를 입고 다닌다고 하면, 세상사람들이 그아이를 올바른 눈으로 봐줄까?“ 휴우~

참으로 궁색한 꾸짖음이 아닐 수 없다. 내 맘 깊숙히 자리 잡고 있는 바로 그 ‘선입견’이란 것이 아이를 나무라야 한다고 나를 부추기고 있었다. 하지만 뭘?
그래도 뭔가 나무라야 할거 같아 “너 아빠한텐 뭐라고 할래? 아빠가 좀 보수적이시니? 나도 모르겠다” 해 놓긴 했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나쁘다라고 생각하고 있었던 것의 나쁜 이유를 댈 수가 없다. 그러고 보니 나도 뚫었네….

내가 어렸을 땐 여자가 귀를 뚫는 것조차 곱게 보지 않았다. 그러나 이제는 사람들의 생각이 많이 개방되어 어린 아이들까지 아무런 거리낌없이 본인이 원하기만 한다면, 그저 모자 하나 사 쓰는 정도의 패션이 되었다. 머리를 자르는 것은 또 어떤가? 여자가 바지를 입는 일이나, 심지어는 운전을 하는 일, 남자가 미용실에 가는 일이나 패셔너블한 옷을 입는일… 이런 것들이 금기시되던 시절도 있었다. 하지만 이 모든것이 딱히 이유도 없는 쓸데 없는 ‘관념’에서 비롯된 것일진데.. 이것에 사람이 묶여버려 조금만 더 생각해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을 스스로 짜여진 상자에 가둬버린 꼴이 되어 버린 것이다.

내 속에 나도 모르게 자리잡고 있는 뿌리 깊은 선입견. 나는 보이는 그대로 보고 그것을 그대로 이해할 수 있는 짜여진 틀이 없는 사람이고 싶었는데...
내 마음 속의 한꺼풀을 걷어내고 다시보니, 녀석의 귀고리가 제법 귀엽고 잘 어울리는 것도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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