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칼럼/ 난세에 영웅 난다

2008-10-15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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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주영(주필)

중국의 한나라가 어지러워지니까 춘추전국시대가 열리고 삼국이 나오는 것처럼 항상 나라가 어지러우면 영웅이 나오게 마련이다. 어지러울 때 영웅들이 할거하면서 뜻있는 사람이 나타나 마침내 영웅이 되곤 하는 것을 우리는 역사를 통해 보아 왔다. 지금 미국은 세계 역사에 없는 경제 파탄에 직면해 있다. 경제대국인 미국에서 경제파탄으로 들어선다고 하는 것은 난세 중에 난세가 아닐 수 없다. 이때 나타나는 영웅은 경제를 어떻게 다스리느냐에 따라 영웅이 되고 안되고 하는 것이다.

누가 뭐래든 지금 미국은 하나의 영웅을 탄생시킬 만큼 경제적으로 매우 힘든 때다. 미국은 오는 11월 대선을 앞두고 대통령 주자가 서로 경제를 내세워 득표를 하려고 애를 쓰지만 미국 경제는 사실 투표와 상관이 없는 것이다. 경제에 대한 경륜이 얼마나 확고하고 경제에 관한 계획과 추진력이 어느 만큼 확고 하느냐가 중요하다. 이 세 가지를 겸비한 대통령이 이 난세에서 역사에 기리 남을 대통령이 되는 것이다. 우리는 지금 모두들 해만 뜨면 경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와 같이 경제에 관한 관념은 사람이 살고있는 한 없어지지 않는 것이다. 그런데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에서 미국인들은 물론, 이민자들도 극심한 고통에 시달리면서 툭하면 해고를 당하고 있다. 월가의 전문직에 종사하는 사람들만 해도 4만 5000명이 해고를 당할 정도로 해고자수가 넘쳐나고 있다. 그 바람에 커네티컷의 데리안이라고 하는 동네라든가, 뉴저지의 저지시티라고 하는 동네 외에 여러 동네가 텅텅비게 생겼다고 한다. 이들이 이미 어디론가 이사를 갔고 이주할 생각으로 지금 이삿짐 보따리를 싸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 같은 이민자들도 많은 수의 자영업자들이 가게 문을 닫을 준비를 하고 있다. 그만큼 미국의 경제가 어렵다. 그런데 어렵고 힘들다고 해서 실망을 하면 그 실망이 좌절로 연결돼 좌절하는 마음을 가지면 헤어날 길이 없다.

우리나라에서 성공한 기업가들의 배경을 들여다보면 그들이 처음부터 일취월장해서 승승장구로 회사를 이끌어온 사람들이 아니다. 참된 경영인이라든가, 진정한 경제인들은 어려움을 겪으면서 점점 자라 오늘에 이른 것이다. 문 닫기 직전까지 간 이들이 일어난 힘은 무엇인가. 좌절하지
않고 도전했기 때문이다. 이병철씨, 정주영씨를 비롯한 우리나라 대표적인 기업주들이 전부다 그랬다. 이병철씨는 우리나라 삼백(三白) 사건, 즉 밀가루, 설탕, 조미료를 불법으로 제조하고 불법으로 시중에 내다 팔다가 적발됐다. 그로 인해 처벌되기 일보직전 벌금형에 회사지분을 나라에 헌납
하고 보니 빈털터리가 되었다. 미풍, 설탕공장에 전 재산을 털어 넣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거기서 그는 좌절하지 않고 살 길을 모색했다.

현대의 정주영씨 경우도 돈 한 푼 없이 현대조선을 세웠다. 그는 돈을 차용해줄 은행을 찾기 위해 전 세계를 돌아다녔다. 그러나 곳곳에서 딱지를 맞았다. 그러다가 이태리에 가서 선박을 취급하는 선박구매자를 하나 만났다. 그에게 거북선 모형을 들고 가 우리나라의 뛰어난 기술을 설명하며 죽을힘을 다해 그를 설득했다. 그 결과 그 배의 주문제작 요청을 하나 받았다. 그리고 영국은행에서 돈을 빌리게 되었다. 만일 이병철씨나 정주영씨가 좌절을 경험하지 않았다면 지금의 삼성이나 현대가 있을 수 있었을까. 좌절의 힘은 그만큼 엄청난 것이다.

지금처럼 어렵다, 힘들다 할 때 살 길, 일어날 길을 찾아야지 그렇지 않고 좌절하게 되면 모든 것이 파멸이고 끝이다. 그런데 지금 경제파탄에 직면하고 있는 미국이 좌절하고 있는가. 이 나라는 절대 좌절하거나 포기하는 나라가 아니다. 비록 짧은 역사 속에서도 수십 번의 어려움을 겪은 나라 미국은 경제 대공황을 겪었으면서도 세계경제를 지배하는 나라가 되었다. 그 배경은 무엇인가. 결코 좌절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힘이 좀 들고 어렵다고 좌절하게 되면 모든 것이 다 끝이다. 어려울수록 힘을 내고 험난할수록 길을 찾아야 한다.

사람의 정신과 머리가 가장 명석해질 때가 언제인가. 가장 배가 고플 때라고 한다. 그러므로 배가 고프다고 하는 것은 육체적으로 가장 어려운 때를 말함이다. 배가 고플 때는 자연 그 명석해진 머리로 먹을 것을 찾으러 나가게 된다. 지금 우리는 가장 어려운 경제적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때문에 지금 이 시기는 스스로를 다시 한 번 냉철하게 점검해 보는 계기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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