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주말 에세이] 나의 문어 선생님 (My octopus teacher)

2025-05-09 (금) 07:59:10 방인숙/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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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외계생명체처럼 이상하게 생긴 문어에 뜬금없이 매혹됐다. 시작은 딸과 사위와 갔던 일식당 벽에 걸린 문어사진이다. 내가 “문어네!”했더니 사위가 마침 친구가 참여했던 문어영화라며 즉시 카톡으로 보내준 ‘나의 문어선생님’이란 다큐멘터리를 보고서다. 2021년 아카데미 장편 다큐, 영국 아카데미, 미국제작자조합 수상작인데, 과연 숨은 신비인 바다 속 영상미가 황홀할 만치 빼어난 수작이다.

내용은 다큐 감독인 그레이그 포스터(Greig Forster)가 삶의 부담감에 탈진, 우울증과 불면증에 시달린다. 치유 차 어릴 때 자랐던 남아프리카 폭풍의 곶인 케이프타운 근처 펄스만으로 귀향한다. 어느 날 바다 속 다시마해초 숲에서 암컷 문어와 조우, 우정의 교감이 싹터 1년 정도 교류하는 과정의 얘기다.

여태껏 나는 문어에 대한 관심도 상식도 전무했다. 기껏 기억나는 게, 2010년 남아공 월드컵 당시, 독일 수족관의 똑똑한 문어가 축구경기 승부예측 맞춤 확률이 높다는 세계적인 이슈가 하도 얼토당토 않았던 일이다.


그런데 이 녹화영상에 곁들인 감독의 해설로 비로소 알게 됐다. 문어가 얼마나 영리한지, 왜 바다의 현자라는지, 인류멸망의 지구차기지배 종으로 개미와 문어를 지목하는지를...

사람의 머리와 닮았다고 지어진 문어란 이름대로, 둥근 머리모양의 몸체에 눈이 두 개다. 아래 머리 입 주변에 달린 다리처럼 보이는 8개의 촉수엔 제각각 움직이는 2000여개의 빨판이 달려있다.

피부를 색깔, 질감, 무늬까지 주변에 맞춰 변하는 위장술이 있다. 영상에 보면 바위인양 위장하거나, 둥글게 웅크린 몸체를 조개, 전복 등의 껍질들로 덮고 있다가 번개같이 헤집고나와 방심한 물고기를 낚아챌 만치 전략적이다. 감독이 이런 문어의 생활반경 80%를 매일매일 애정 어린 시야로 추적, 카메라에 담았다.

문어와 만난 지 26일째엔 경계심을 푼 문어가 눈을 맞추고 촉수하나를 뻗어 감독의 손을 만진다. 52일째가 되자, 문어는 자발적으로 따라와 손등, 가슴, 배위에 밀착해 물위까지 함께 유영한다.

무척추에다 비사회적 동물임에도 촉수들을 우산처럼 폈다 접었다 하면서 감독과 물고기 떼와 수중발레 하듯 장난하며 어울리는 모습은 신비롭다. 포유동물이 아닌데도 개, 고양이 수준의 지능으로 인간과 감정교류 가능이란 사실이 영 믿기 어렵다.

324일째, 수컷 문어와 짝짓기 하더니 일체 사냥금지에 금식이다. 수컷은 교미 후 몇 달 내에 죽고, 암컷 혼자 산란 후 알들 보호에 올인한다. 사이펀으로 알에 산소를 공급하고 수관으로 물을 뿜어 이끼방지에다 포식자들로 부터의 접근차단이다.

그렇게 수개월 동안 꼼짝 않고 금식을 유지하며 서서히 죽음에 대비하는 모성애가 눈물겹다. 드디어 알들이 부화하자, 스스로 고려장 시키듯 겨우 숨만 붙은 채 굴 밖으로 나온다. 각시불가사리와 물고기들에게 몸을 내주곤 무저항 상태로 사정없이 물어 뜯긴다. 끝내는 얄밉게도 상어가 몸통 째 꿀컥 물고서 줄행랑친다.


철저하고 냉혹한 약육강식의 세계에서도 최선을 다해 살다가, 책무를 마치자마자 담담히 받아들이는 임종의 모습! 경이롭고 숭고해 멍해진다. 인간의 삶 또한 얼마나 유약한지 대비되면서...

그런데 제목이 왜 문어친구가 아니고 문어선생님이지? 문득 떠오른 의문이다. 아들도 동참시켜 함께 해양생물보호연구에 매진하는 감독의 말에 답이 있다.

“문어 덕에 출근하던 바다 속에서 자연의 일원이라는 소속감, 자연과 야생의 세계의 소중함, 모든 생명의 가치를 배웠고, 내 자신의 일과 인간관계도 회복됐다”
나 역시 문어가 더 이상 하찮게 여겨지지 않고, 선생이란 호칭도 자연 걸맞게 느껴진다.

<방인숙/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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