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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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극적인 자세를 극복한 브리아나 II

2008-09-30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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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온경(데이비슨 초등학교 도서미디어 교사/새한국문화학교 디렉터)

드디어 직업탐색의 날이 되었다. 머리를 뒤로 묶고 핑크색 리본으로 깔끔하게 단장한 브리아나가 흰 블라우스와 핑크색 스웨터를 입고 하얀 치마와 스타킹 그리고 구두를 신은 단정한 모습으로 도서관에 나타났다. 브리아나는 며칠 전에 이미 자신이 학생들에게 읽어 줄 책들을 이미 골라 놓았었다.

브리아나가 출근(?)하자마자 필자는 그녀에게 도서미디어교사의 업무를 간단히 안내해주고 그날 가르칠 수업들의 교안들을 보여주었다. 매 수업의 교안마다 수업의 Aim(목적), Motivation(동기부여), Procedure(수업진행순서), 그리고 Summary(수업의 총정리)가 포함되어야 한다는 설명도 해주었다.첫 수업은 2학년 학생들이었다. 필자가 학생들에게 브리아나를 오늘의 일일 도서미디어 교사라고 소개하자마자 브리아나는 필자가 평소에 앉는 Rocking Chair에 앉아 여유있는 모습으로 2학년 학생들에게 자신을 소개하였다. 곧이어 브리아나는 각 학생들의 이름을 하나하나 묻고서 자신이 읽을 시집 Monster Motel을 읽기 전에 monster에 관해 아는 바가 있는지 학생들에게 물어보고, 답변을 칠판에 일일이 적었다.


수업준비를 미리 했는지, 즉흥적으로 생각이 떠올랐는지 알 수 없지만, 그녀는 4학년 학생이라고 생각할 수 없을 정도로 침착하고 여유있게 학생
들을 가르쳤다. 2학년 학생들 또한 자신들보다 두 살 많은 브리아나에게 무척 관심을 보이며 손을 들고 자신이 호명되기를 바랐다. 좋아하는 스포츠, TV 프로그램, 음식, 심지어 가족사항까지 질문이 끊이지 않았다. 수업이 거의 끝나갈 무렵, 브리아나는 필자가 알려준 대로 자세가 바르고 대답을 잘 한 학생들에게 전국도서관주간(National Library Week)행사의 일환으로 책을 선물로 나누어 주었다.

두 번째 시간에 1학년 학생들을 상대로 군것질에 관한 이야기를 읽어주기 전에 브리아나는 Junk Food을 즐겨먹는 학생들은 손을 들라고 하고, 자신의 가족 중에 당뇨병 환자가 있는 것을 예로 들며 군것질이 얼마나 건강에 해롭고 술, 담배 만큼이나 끊기가 어려운 것인지를 역설하였다. 수업이 끝난 후 필자가 칭찬과 더불어 몇 가지 조언을 해주자 브리아나는 그것을 곧바로 받아들여 그 다음 수업에 반영하곤 했다.세 학급을 연달아 가르치고 나서 브리아나와 점심을 먹으며 대화했을 때 브리아나는 자기가 3
학년 때 일일 도서미디어 교사로 왜 지원을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고 하며 무척 열띤 표정을 지었다. 마지막으로 2학년 학급을 가르치고 나서 브리아나는 자신의 학급으로 돌아갔다.

직업탐색의 날(Career Day)의 피날레로서 전교생들이 강당에 모여서 그날 초청 연사로 초대된 변호사로 부터 어떻게 변호사가 되었으며 업무는 어떠한 것인지 등에 관해 듣는 시간이었다. Special Forces 학생들이 무대에서 한명씩 차례대로 준비한 질문을 변호사에게 하면, 변호사가 강당에 모인 모든 학생들에게 대답을 하는 시간이었다. 브리아나는 그 초청연사에게 변호사로서 가장 어려운 때는 언제였냐고 질문을 하였다. 또 한번 브리아나의 침착함에 놀란 순간이었다.그 다음날 브리아나는 미술시간에 그린 그림이라며, 그림을 하나 내 책상에 놓고 갔다. 그 그림은 자신이 도서관에서 일일 도서미디어 교사가 되어 하급생들을 가르치는 모습이었으며, 나는 그것을 그녀의 사진과 함께 벽에 걸어놓고 오랫동안 볼 작정이다.

지난 6월 방학을 앞두고 여러 학생들이 졸업 앨범에 사인을 해달라고 도서관으로 필자를 찾아왔었고 브리아나도 그중의 하나였다. 너를 가르칠 기회를 가져서 기쁘고, 중학교에 가서도 성공하기 바란다고 하자 브리아나는 미소지으며 의젓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해마다 4학년들을 보내며 섭섭하고도 흐뭇한 느낌이 드는데, 브리아나는 보내게 되어 섭섭하지만, 무대공포증을 이기지 못했던 소극적인 1학년 학생의 모습에서 어엿한 4학년 학생으로서 무대 위에서 초청연사를 인터뷰하고, 도서관에서 하급생 들을 일일교사로서 직접 가르칠 수 있었던 여유있는 4학년 학생으로 자란 것을 보니 흐뭇하기 이를 데 없다. 이는 브리아나의 확고한 결심과 열심, 그리고 부단한 노력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된다.

미국에서 태어나 자랐지만 집안의 가풍은 한국식이어서 미국 학교에서 시원시원하게 발표를 하지 못하는 한국계 미국인인 우리 자녀들과 한국에서 태어나 자라다 미국에 온 우리 자녀들도 브리아나처럼 소극적인 자세를 극복하겠다는 확고한 결심을 가지고 매사에 열심을 내며, 부단히 노력하면, 타고난 소극적인 자세나 문화의 차이에서 오는 표현력의 부족 등을 극복하고, 미국사회에서 자신이 가지고 있는 우수성을 적극적으로 표현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부모님들께서는 자녀들과 함께 TV와 신문, 잡지 등을 함께 보고 대통령 선거, 금융위기 등의 현안들에 관해 식탁에서 자유롭게 토론할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해주시도록 부탁드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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