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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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극적인 자세를 극복한 브리아나

2008-09-23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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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온경(데이비슨 초등학교 도서미디어 교사/새한국문화학교 디렉터)

필자가 도서미디어교사(School Library Media Specialist)로 근무하는 초등학교에는 유치원에서 4학년까지 약 350명의 학생들이 재학한다. 이 학생들이 일주일에 한번은 도서관에 와서 필자에게 도서관 수업을 받고, 또 한번은 컴퓨터실에서 컴퓨터를 이용한 심화학습(enrichment)을 받는다. 즉, 한 학생이 유치원에 입학해서 4학년을 마치고 졸업을 할 때까지 필자는 350명의 학생을 5년간 일주일에 두번씩 지켜보게 되는 것이다.

이 많은 학생들 가운데서 유난히 기억에 남는 학생이 몇 있다. 그 중에서 지난 6월에 졸업한 브리아나는 오랫동안 잊지 못할 제자이다. 1학년때 처음 만난 브리아나는 체구는 작지만 항상 선생님을 응시하고 수업시간에 주의를 집중하는 미국학생이었다. 브리아나가 1학년 때 필자가 주관한 교내 스토리텔링 대회(Storytelling Contest)에 참가할 학생들을 뽑아서 연습을 시켰는데 그 당시 브리아나는 1학년인데도 책 한권을 줄줄 외울 수 있을 정도로 영특해서 담임선생의 추천을 받았다. 이야기대회를 하루 앞두고 필자가 참가 학생들을 강당에 모아놓고 무대 위에서 리허설을 했을 때 브리아나는 떨지도 않고 이야기를 술술 암송하는 것이었다.


드디어 이야기대회가 시작되어 참가학생들이 순서대로 무대 위에 올라가 준비한 이야기들을 암송하였는데, 평소에 외향적인 학생들은 무대 위에 올라가서는 제스처를 섞어 아주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함으로써 관객들의 주의를 사로잡았다. 드디어 브리아나의 차례가 되었다. 무대 위 마이크 앞에 선 그녀는 300여명의 관객들 앞에서 좀 떨린 듯 주춤하다가 이야기를 시작하려 했으나,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머뭇거리다가 그만 울먹이고 말았다. 결국은 아버지가 그녀를 데리고 내려갔는데 나중에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브리아나는 유치원에서도 무대공포증(stage fright) 때문에 무대 위에서 하는 공연을 포기해야 했었다면서 그것이 자신의 징크스라고 말하
는 것이었다.

브리아나가 2학년 때 필자가 ‘4월은 시의 달(April is Poetry Month)’을 맞이하여 교내 시 낭송대회를 실시하였는데 브리아나는 또다시 참가를 희망했다. 그녀의 무대공포증이 생각나 이번에는 그 학급에서 여섯 명을 뽑아 돌아가면서 시의 한 소절씩 낭송하도록 하였다. 발표회 날이 되었다. 브리아나는 다섯 명의 급우들과 함께 무대에 올라가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로 또박 또박 그녀의 맡은 파트를 낭송했다. 브리아나가 무대 위에서 빛나는 순간이었다.

3학년에 올라간 브리아나는 교내에서 학생 간부인 Special Forces의 일원으로서 소셜워커의 지도하에 학교의 발전을 위하여 열심히 일하는 것을 지켜보며 필자는 흐뭇한 느낌을 가졌었다. 예를 들면, 이 학교내에 있는 자폐증(autism)학생들의 유치원 학급에 가서 하루 1시간씩 학생들에게 1대1로 책을 읽어주는 등 씩씩하게 자원봉사를 하는 것이었다.브리아나가 4학년 졸업반이 된 올해 4월 이 학교에서 소셜워커가 매년 주최하는 ‘직업탐색의 날(Career Day)’에 4학년 학생들이 장래 가지고 싶은 직업을 하루동안 탐색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즉, 교장, 간호원, 비서, 도서미디어 교사, 미술교사, 음악교사, 수위 등 학교 내의 직업을 Career Day 하루 동안 직접 경험해볼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으로 지원신청서에 기입
하고 담임선생님의 추천을 받은 후 담당교사나 직원의 인터뷰를 거쳐 최종 채용이 결정되는 것이다.

브리아나는 도서관이나 컴퓨터실에서도 수업이 끝나면 솔선수범하여 의자들을 책상 밑으로 밀어넣는 등 봉사정신이 강했다. 필자가 그녀에게 일일 도서미디어교사가 되어볼 생각이 없느냐고 권유하자, 그녀는 흔쾌히 응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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