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교단일기 / 천경주(상항 한국학교 교사)

2008-09-12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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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잣대

“이 아이는 그 어떤 것에도 집중할 수 없을 거예요.”
선생님은 아이의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마이클은 바로 앉아 있지도 못해요. 수업 중에 조용히 하지 못하고 어떤 활동에도 집중하지 않아요. 마이클은 그 어떤 것도 제대로 할 수가 없을 겁니다.”
어머니는 너무 놀랐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속으로 이렇게 확신했다.
‘아뇨, 당신이 잘못 생각했어요. 우리 애가 집중할 수 있는 무언가가 반드시 있을 거예요.’

베이징 올림픽의 수영 영웅 마이클 펠프스는 아홉 살에 ADHD라는 정신과 진단을 받았다. ADHD는 과잉행동, 집중력 저하. 충동 조절 장애의 증상을 보이며 그 결과 정상적인 학교생활과 가정생활에도 어려움을 겪게 된다. 마이클은 어려서부터 넘치는 에너지를 제어할 수가 없을 정도로 활동적이어서 소위 학교에서 내놓은 아이였다고 한다. 하지만 마이클의 어머니는 자신의 아이가 지나치게 에너지가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집중력이 부족하다고는 결코 생각하지 않았다. 마이클이 좋아하고 열중할 수 있는 무언가가 반드시 있을 거라고 믿었던 것이다.

사실 ADHD는 집중력의 결핍으로 인한 학습장애로 여겨지는 경우가 있지만 이는 근거 없는 이야기이다. 브라이언 허취슨에 의하면 이러한 아이들은 자신들이 하고 싶어 하는 것에는 엄청난 집중력을 발휘하며 그것이 마이클의 경우처럼 커리어에 도움이 되는 대상이라면 매우 바람직한 결과를 가져온다고 한다. 마이클의 어머니는 자신의 아들이 수영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매우 중요하게 여겼고 끓어오르는 에너지를 수영에 쏟을 수 있도록 최대한의 지원을 했다. 마이클은 점차 수영에 더 재미를 붙였고 이윽고 엄청난 집중력을 보이기 시작했다.

훗날 마이클이 수영 영웅이 되어 세상을 놀라게 했을 때, 어머니는 마이클을 학교에서 내쫓으려 했던 그 선생님을 떠올리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그 선생님은 마이클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어요.”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보면 그 때 그 말이 단단히도 마음에 맺혔나보다.
생각해보면 그 선생님은 참으로 위험한 말을 조심성 없이 내뱉은 실수를 했다. 아이가 자신의 기준과 멀다고 해서 아예 가능성이 없는 아이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학교에서 생활하다보면 다양한 아이들을 만난다.
매사에 느리면서도 꾸준히 자기 일을 하는 아이, 반면에 이해력은 뛰어나지만 지나치게 영리하고 자신만 생각하는 아이, 글은 잘 못쓰지만 말하기는 아주 잘 해서 선생님조차도 말문이 턱턱 막히게 입심이 좋은 아이, 말수는 적지만 따뜻한 마음이 느껴지는 글을 써 감동시키는 아이, 고집이 세서 자기가 원하는 일이 아니면 꿈쩍도 하지 않는 아이, 심술 맞아 보이지만 속으로는 인정 많은 아이.... 다들 발달한 분야가 다르고 발전하는 속도도 틀리다.

어떤 기준으로 이렇게 다양한 아이들 하나하나를 제대로 이해하고 평가할 수 있을까? 아마 그런 기준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간혹 선생님들은 보이지 않는 마음속 잣대를 가지고 있다. 오랜 경험에서 얻은, 그래서 약간은 딱딱하고 융통성 없어진 잣대, 그리고 이런 분별심이 문제가 많은 아이, 골치 아픈 학생을 만들어 낸다.

수업 중에 보이는 학생의 태도만을 가지고 그 학생의 전부인양 평가해 심각한 오류를 범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여러 가지의 행동으로 미루어 보아 경험 많은 선생님들은 저 아이가 어떤 성향의 아이인지 판단하게 되지만 사람은 열두 번도 변한다는 우리네 속담처럼 아이의 발현되지 않은 잠재력들을 얄팍한 잣대로 무시해버려서는 안될 것이다. 아이들을 커나간다. 성장한다는 것은 변한다는 것. 그것만으로도 너무나 아름다운 자연의 현상이다. 이해의 눈을 가지고 인간적인 접촉을 통해 그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인다면 편협한 잣대를 쉽게 내려놓을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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