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흰 머리 / 이주연

2008-08-08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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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성의 창

흰머리 나는 것도 유전이라더니 친정엄마를 닮아 유난히 일찍부터 흰머리가 눈에 띄었다. 그도 내가 살아온 세월의 일부이니 편안한 마음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으련만 조금만 흰머리가 올라오는 것이 보여도 용서가 않된다.부지런히 염색도 하고 “초전박살?”의 일념으로 그 뿌리가 조금만 보여도 쪽집게로 뽑아내기가 바쁘다. 그런데 이 쪽집게로 혼자서 흰머리를 뽑는 일이 영 만만치가 않다. 오래도록 팔을 올리고 있자니 어깨도 아프고 혼자서 거울을 통해 머리 위를 올려다보자니 이마에 잡히는 주름도 정말이지 볼상 사납다. 흰머리를 그대로 두자니 그도 신경에 거슬리고 이러다 이마에 잡힌 주름이 자글자글 그대로 굳어져버리면 어쩌나 또 한걱정이다. 누군가 시원하게 흰머리를 뽑아주었으면 싶다.

고등학생 때였던것 같다. 엄마가 오만 인상을 찌뿌리고 거울을 보며 흰머리를 뽑고 계셨다. 내가 방으로 들어서자 흰머리를 좀 뽑아달라 하셨던것 같다. 난 뭐가 그리 심통이 났던지 엄마에게 대뜸 짜증을 냈다. 그것도 다 엄마가 살아온 세월의 징표인데 담담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흉하고 힘들게 그게 뭐하는거냐고…그리 뽑는다고 흰머리가 안 나느냐고… 엄마 맘이 얼마나 아팠을까 싶다. 뽑기 싫으면 말이나 말것이지 말이다. 다섯이나 되는 자식들 키우느라 당신의 인생은 생각해 볼 겨를도 없이 맞이했을 머리 속 가득한 흰머리들을 보며 적잖히 속이 상하셨을텐데 왜 난 그리 매정한 말들을 엄마에게 퍼붓었던건지.

흰머리를 한참 뽑고 있는데 아들녀석이 들어서며 말을 건넨다. “엄마, 그렇게 뽑는다고 뭐가 달라져요?차라리 그냥 염색을 하시던지요.”한다. 염색을 해도 쉴새없이 밀고 올라오는 흰머리들을 어쩌란 말인가. 설움이 밀려온다. 그런데 그 순간 아들 아이가 말한다. “쪽집게 주세요. 내가 열개만 뽑아 드릴께요. 딱 열개요.” “열개? 그걸로는 어림도 없는데…”하면 쪽집게를 건냈다. 갑자기 엄마 생각이 났다. 이젠 검은머리보다 흰머리가 더 많아지셔서 흰머리를 뽑아드릴 수도 없는 우리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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