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에라네바다 마운틴에서는 토파즈 빛깔의 그림처럼 펼쳐 있는 푸른 호수를 곳곳에서 만날 수 있다.
마운트 랭리 등정의 베이스캠프인 코튼우드 레익 트레일 캠프장.
설암산악회 시에라네바다 등정
LA 북쪽으로 약 5시간 거리에 있는 시에라네바다(Sierra Nevada) 산맥은 만년설로 덮인 화강암 바위산과 토파즈 빛깔의 푸른 호수가 그림처럼 펼쳐 있고 야생화 만발한 초장 위로 진동하는 폭포소리가 끊이지 않는 곳이다. 사람의 발길이 쉽게 닿지 않는 외진 이곳을 동경하는 사진작가, 산악인, 암벽 등반가들이 짧게는 주말 동안 길게는 수개월씩 자신의 인내를 테스트하면서 자연과 호흡해 보는 공간이기도하다. 특히 1만4,000피트(4,267미터) 이상의 고봉들로 이루진 ‘포티너스’(14ers)를 등정하는 경험은 두려움을 넘어 자연에 대한 잊지 못할 존경심을 갖게 한다. 산악 루트에서 수직 암벽 루트에 이르기까지 어느 하나 쉽지 않은 14ers 산행은 일반인들의 예상을 초월하는 체력과 인내를 요구한다. 하지만 꾸준한 훈련과 도전을 통하여 쉬운 산행부터 경험을 쌓는다면 아주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최근 14ers에 대한 도전장을 내민 설암산악회를 통하여 캘리포니아 명산을 시리즈로 찾아가 보는데 오늘은 그 첫 순서로 시에라네바다에서 세번째로 높지만 등산로가 완만해 초보자들도 도전할 수 있는 화이트 마운틴과 미국 본토에서 가장 높은 마운트 위트니보다 등정이 어렵다는 마운트 랭리 등을 소개한다.
설암산악회 대원들이 마운트 랭리 정상을 향해 첫발을 내딛고 있다.
고산식물·돌무더기·만년설 올라갈수록 확 바뀌는 풍광
▲마운트 랭리 (Mt. Langley)
해발: 1만4,042피트
거리: 왕복 21마일
시간: 13시간
등반고도: 4,000피트
난이도: Class 2, 3(초급 암벽)
■마운트 랭리
시에라네바다 산맥 최남단에 위치한 1만4,000피트급 마운트 랭리(Mt. Langley)는 중간 지점인 코튼우드 호수(Cottonwood Lake)까지 울창한 나무숲으로 덮여 있어 매우 쾌적한 느낌을 준다. 14ers 중에 쉬운 편에 속한다고는 하지만 미국 본토 최고봉 위트니 산 등정보다 어려운 곳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 7월3일 독립 기념일 연휴를 맞아 걱정과 기대를 안고 5명의 설암대원들이 코튼우드 레익 트레일 캠프장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7시께. 한때 서부극 촬영지로 유명했던 론 파인(Lone Pine)에서 피자로 저녁을 하고 1만피트 높이의 캠핑장을 향해 산허리를 지그재그로 오르는 길이 매우 낭만적이다. 캠핑장에는 휴일을 하이 시에라에서 보내려는 방문객들로 가득하다.
워낙 넓은 지역이어서 캠핑 자리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5인용과 2인용 텐트를 쳤는데 2인용 텐트는 유일한 여성 회원인 헬렌을 위한 것. 텐트를 치는 동안 모기들이 벌떼처럼 달려든다. 7, 8월에는 모기 퇴치용 스프레이를 반드시 준비해야 하는 곳이다.
다음 날 새벽 4시 기상, 아침과 점심 모두 움직이면서 먹을 수 있는 ‘행동식’으로 하기로 하고 짐을 챙긴다. 모두들 조용히 잠든 캠핑장 위로 서서히 비치는 여명에 밤하늘 별들이 희미하게 사라진다. 임상기 회원이 오늘의 무사한 등정을 위한 기도를 제안한다. 간단한 기도를 올리고 숲속을 향해 출발했다.
어두운 가운데서도 경사가 거의 없는 평탄한 길이 계속된다. 왠지 오늘의 산행은 예상보다 쉽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동이 트고 사방이 밝아지자 좌우로 빽빽이 솟은 초록과 갈색 침엽수들의 윤곽이 드러난다. 넓은 초장이 펼쳐지고 맑은 물이 흐르는 곳에서 잠시 숨을 돌리는 동안 멀지 않은 나무숲에서 곰이 울부짖는 듯한 소리가 들린다. 다시 중간 기착지인 코튼우드 레익을 향해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긴다.
마운트 랭리를 오르는 길은 ‘올드 아미 패스’(Old Army Pass)와 ‘뉴 아미 패스’(New Army Pass)로 나뉘어 있는데 코튼우드 레익을 지나면 올드 아미 패스로 연결된다. 코튼우드 베이슨(Cottonwood Basin)으로 알려진 넓은 초장에는 크고 작은 호수들이 여러 개 있으며 호수마다 고유번호가 매겨져 있다.
사파이어 빛 호수에 잔잔한 물결이 일고 초록색 수초 사이로 오리 가족이 여유롭게 헤엄치는 모습은 어릴 적부터 뇌리에 간직해 왔던 파라다이스의 한 장면이 아니었던가 싶다. 이윽고 마지막 넘버 5 호수 위로 웅장하게 솟아오른 바위산이 펼쳐진다. 초목이 전혀 없는 회색 암벽이 좌우로 길게 누운 랭리의 위용이 펼쳐진다. 아래편의 나무숲과 호수와 조화를 이루어 뭐라 표현할 수 없이 한 폭의 그림을 보는 듯 하다.
올드 아미 패스는 절벽 위로 아슬아슬하게 깎아 놓은 길인데 7월 초에도 눈으로 덮여있었다. 곳곳에 눈 녹은 물이 등산로를 쓸고 내려 흙이 푸석하게 풀려버린다. 곧바로 절벽의 암반까지 다가서야 간신히 건널 수 있다. 만약을 대비해서 크램펀을 준비해 온 것이 다행이었다. 약 1시간가량 바위 눈길과 씨름하다가 올드 아미 패스의 정점을 오르는 순간 넓은 평지가 나타난다. 그리고 랭리 정상이 있는 오른쪽으로 완만한 경사가 나타난다. 1만3,000피트 능선에는 풀 한 포기 보이지 않고 매서운 바람소리만 귓전을 스친다. 고소가 오는 듯 모두들 말없이 앞만 보고 걷는다. 바위산에 가까울수록 지금까지 단단하던 길이 모래흙으로 바뀌면서 발아래에서 슬슬 풀어지면서 걷기가 매우 힘이 든다.
정상에서 만끽하는 승리의 쾌감은 산악인들만 느낄 수 있는 즐거움이다.
랭리 정상을 오르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으나 곧바로 중간 부분에서 바위를 타고 완만한 주능선을 오르는 방법과 오른편 끝까지 간 후 클래스 2·3암벽을 급하게 타고 올라가는 방법이 일반적이다. 후자가 좀 더 힘들지만 지름길로 알려져 많이 선택하는 루트이다. 우리 일행 앞에 백인 산악인이 홀로 암벽을 오르는 것이 먼발치에서 보인다. 열심히 그 뒤를 쫓아간다. 이윽고 암벽 밑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2시30분, 출발점에서 약 7시간30분이 소요되었다.
하지만 바위산을 올려다보는 순간 오늘의 정상 정복은 가능한 것인가 하고 의구심에 휩싸인다. 암벽을 오르는 모습은 많이 보아 왔다. 그리고 얼마 전에 등반학교에서 실전을 통하여 연습도 해 보았다. 로프에 의지하여 매끈한 바위를 손끝으로 이리저리 잡아보며 온몸에 힘을 주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오늘은 로프를 사용할 수 없다. 아니 로프가 있더라도 어설프게 사용해서는 안 된다. 바위 사이로 손으로 붙잡고 올라갈 수 있는 길이 있는지 열심히 찾아본다.
회색 화강암 바위의 갈라진 틈새로 손을 넣고 몇 차례 오르기를 거듭하자 이내 숨이 차고 힘이 빠진다. 에너지가 고갈되어 중심을 잡는 발걸음이 매우 위태롭다. 무리하게 하지말자 서로 다짐해 본다. 다행히 동료 임상기 회원이 먼저 앞장을 서 준다. 그리고 서로 상의를 하면서 방향을 잡아본다. 바위 사이로 길이 분명히 있을 텐데 한데 과연 어느 쪽인가? 몇 걸음 앞서 오르던 임상기 회원이 돌무더기 표식을 발견했다고 알려준다. 우리 앞서 간 사람들이 표시해 둔 것이었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다.
드디어 바위산 끝이 보이고 풍화작용으로 상어 지느러미 같이 생긴 눈밭이 나타난다. 제발 이곳이 마지막이길 기원한다. 만약 지나칠 수 없는 큰 바위 하나만 더 나타나도 정상 도달은 실패하는 것. 임상기 회원에게 더 이상 높은 바위는 없는지 물어본다. 임 회원이 “이것이 끝입니다”라고 반가운 소식을 전해준다. 물론 정상은 더 높은 곳에 있지만 나머지는 걸어서 도달할 수 있었다. 약 20분 전 미리 올라왔던 백인 산악인과 인사를 나눈 후 사진을 부탁했다. 독립기념일인 오늘 산행을 위해 산악회기, 연맹기. 성조기, 그리고 태극기를 준비했다.
랭리 정상에서 바라보는 모습은 여느 곳과 사뭇 다르다. 미 최고봉 휘트니와 연결되는 1만3,000피트급 봉우리들과 러셀, 윌리엄슨 등 1만4,000피트급 고봉이 도열해 있다. 암갈색의 우중충한 바위산들과 까마득히 떨어져 내리는 계곡 사이로 청록의 호수들이 보인다. 한 장면의 그림처럼 가득히 들어오는 대자연의 풍광은 두 눈으로는 도저히 소화를 해 낼 수 없다. 그저 마음 한편에 각색해 놓고 싶은 생각뿐이다. 좀 더 오래 있고 싶으나 바람이 제법 매섭다.
밑에서 기다리고 있을 대원들도 걱정이 되어 사진을 찍은 후 급히 하행을 서둘렀다. 정상 등정 후에 내려가는 길은 뿌듯한 감흥이 있다. 목표를 달성한 자부심과 다음 산행에 대한 자신감, 기대감 등이 어우러진 것일 것이다.
하행 길에 다시 만난 올드 아미 패스 아래편으로 펼쳐지는 코튼우드 호수들이 너무나 평화스럽다. 호수 근처에 낚시와 캠핑을 즐기는 이들의 모습 또한 매우 한가롭다.
주말을 맞아 등짐을 하고 호수까지의 산길을 오르는 남녀노소 가족들이 무척 부럽기도 하다. 가끔은 아름다룬 자연 속에서 쉬어 갈 수 있는 여유로움을 소망해 본다.
▲가는 길
LA에서 395번 하이웨이를 따라 북쪽으로 약 4시간 운전하면 Lone Pine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Whitney Portal 가는 길로 들어선 후 3마일 지점에 나오는 Horeshoe Meadow 로드에서 좌회전하여 산위로 계속 올라가면 된다. 두 군데 캠프장 중에 Cottonwood Lake Trail 캠프장을 사용하도록 한다.
캘리포니아를 대표하는 최고봉 중 하나인 마운트 랭리.
1만2천피트부터 고소증 엄습
풀 한포기 없는 정상서
청명한 하늘밑 비빔밥은 별미
▲화이트 마운틴(White Mountain)
해발: 1만4,246피트
거리: 왕복 14마일
시간: 9시간
등반고도: 2,300피트
난이도: Class 1(보행으로 올라갈 수 있는 길)
■화이트 마운틴
어제 13시간에 걸쳐 마운트 랭리를 등정하고 난 뒤 지친 모습으로 캠핑장에 돌아온 후 모두들 LA로 철수하려고 마음먹었던 터이다. 하루를 쉬고 난 뒤에 몸의 상태를 보고 결정을 하기로 했지만 워낙 무리를 한 터라 또 다른 14ers에 대한 자신이 없었다.
새벽녘 누군가의 기척이 느껴진다. 모른 척 잠을 청하려고 하는데 헬렌이 모두들 일어나라고 깨운다. 오늘 화이트 마운틴을 가야겠다고 한다. 모두들 놀란 눈으로 서로 바라본다. 하룻밤 푹 자고 난 후 확연히 달라진 모습을 보이는 대원들은 컨디션이 좋다. 이왕 마음먹고 멀리 올라왔는데 일정을 완수하자. 모두들 부지런히 짐을 챙기고 나서니 아침 5시가 채 안되었다.
론 파인에서 40분 정도 떨어진 ‘빅 파인’(Big Pine)까지 운전해서 아침식사를 하고 자동차에 개스를 채우고 식수도 준비하고 보니 거의 오전 6시30분이 되었다. 부지런히 빅파인에서 168번 하이웨이를 화이트 마운틴으로 향했다. 시골 산길을 오르는 듯한 도로 주변은 나무가 울창하고 풍치가 수려하다.
캘리포니아 3번째 고봉인 화이트 마운틴은 시에라네바다 건너편의 사막지형 위로 높이 솟은 산이다. 그러한 연유로 등산로 인근에는 나무가 거의 없고 메마른 돌산이 계속된다. 인근의 ‘오웬스 밸리’(Owens Valley)와는 무려 9,000피트의 고도 차이가 난다. 정상에 가까워지면서 수천피트 떨어지는 계곡과 눈 덮인 시에라네바다 산맥이 일렬로 도열해 있는 풍광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이다.
출발점에서 약 2마일 지점에 고산 연구시설이 있고 양을 치는 축사가 있다. 이곳에 즈음에서 두통을 동반한 고소증상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1만2,000피트 이상 등산 경험이 없는 방문자들은 이 근처의 캠프장에서 하루를 지내면서 고소에 미리 적응을 해 두는 것이 좋을듯하다.
황갈색의 흙 위에 흰 눈을 두르고 있는 화이트 마운틴은 멀리서도 그 위용 당당함을 느끼게 한다. 탁 트인 주변의 경관과 눈 덮인 시에라네바다 산맥과 절충되어 유럽의 산골에 와 있는 듯한 분위기를 느끼게 한다. 그리고 비숍 인근에는 수많은 온천장들이 있어 등산 후 온천을 찾아 피로를 푸는 좋은 옵션이 있다.
약 5시간의 강도 높은 산행을 한 후 온통 돌투성이인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에는 작은 연구실 건물이 있고 정상 등정 기록부가 있다. 등정에 지친 다른 그룹의 등반인들이 벌렁 눕거나 준비한 샌드위치를 꺼내든다. 우리는 한국에서 수입한 즉석 비빔밥을 시식해 보았다. 끓는 물을 넣고 약 10분을 기다린 후 고추장과 참기름을 넣고 비벼먹는 음식으로 맛이 훌륭했다. 미국계 산악인들이 새로운 형태로 즉석에서 식사준비를 하는 우리 팀을 호기심 있게 바라본다.
화이트 마운틴 정상에서 내려오는 동안 청명한 푸른 하늘과 맑은 공기가 가득하다. 멀리 지평선까지 모든 풍경이 한눈에 들어오다. 경사도 급하지 않아 매우 쾌적하다. 단지 뜨거운 태양과 물이 없는 등산로에 대한 준비는 단단히 해야 한다.
▲가는 길
Big Pine에서 168국도를 따라 약 13마일을 운전하여 White Mountain Road에서 좌회전 한 후 끝까지 올라가면 된다. 중간에 비포장도로가 있으며 Big Pine에서 약 2시간이 소요된다.
정기적인 원정산행을 통한 심신단련과 함께 회원들간의 친목도모에도 중점을 두고 있는 설암산악회.
■설암산악회
설암산악회는 산행 경험이 풍부한 회원들을 중심으로 약 20명이 남가주 인근의 고봉을 정기 산행하고 있다. 매주 토요일 아침 오전 7시에 시작하는 산행은 평균 10~15마일 거리로 약 6시간에서 9시간 정도 소요된다.
재미산악연맹 소속으로 암벽 및 겨울철 등반훈련도 실시하고 있다. 또한 정기적인 원정 산행을 통한 심신단련과 함께 회원들 간의 친목도모에도 중점을 두고 있다.
개별적으로 세계의 고봉인 매킨리, 히말라야, 킬리만자로 등을 다녀온 회원들이 많아 풍부한 산행 경험을 바탕으로 해외 고산원정 회원들을 적극 지원해 주고 있다. 약간의 산행 경험이 있는 새 회원을 수시로 모집하는 설암산악회 연락처는 (714)469-0870, suramalpin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