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식이 낳은 자식 앞에서 / 김정옥
2008-07-16 (수) 12:00:00
어떻게 하다 보니 할머니 할아버지가 된 친구들로만 네 쌍이 만나게 되었다. 미리 약속을 한 건 아니었는데 커피와 갓 구어 낸 불란서 빵을 앞에 놓고 모처럼 한가한 아침을 맞게 된 것이다. 사실 엇비슷한 나이들로 모여 앉아도 게 중에는 아직 결혼도 안 한 자녀를 둔 집도 있고 해서 실은 할머니들이 하고많은 손주들 자랑을 맘껏 못할 때가 많았다. 남의 손주 이야기에 뭐가 그리 재미가 있겠다고. 오죽했으면 돈 내고 손주 자랑하라던 말이 이젠 돈 걷워 주며 입막는다는 말로 바뀌었을까.
그래도 눈치들은 있어 가지고 좌중을 보고 아니군 싶은 생각이 들 때면 한 두 마디 슬쩍 던져 보고 그만두곤 했던 손주들 이야기가 본격적으로 터지기 시작했다. 시시콜콜 온갖 자랑으로 시작된 이야기들이 손주들과 재미있게 놀아 주다가 위험한 일이니 배우면 안되니 하며 핀잔 듣는 이야기로 바뀌고 드디어는 저를 키워낸 사람이 난데 아이 키우는 법을 모르는 사람 취급받는다는 서운함까지 내 비치게 되었다. 어쨌거나 자식은 야속할 때도 있지만 마냥 이쁘기만 한 손주는 어쩔 것인가. 보고 싶을 때 자주 보고 사랑할 수 있을 때 많이 사랑해 주는 것이 신참 할머니들의 할 일이지 싶다.
나이가 든다는 것은 자칫 서운함이 느는 시기다. 아는 것이 많으니 짚이는 것도 많고 바라는 것도 많다. 아들이나 딸, 며느리, 그리고 사위들은 생각도 일 처리하는 법이나 자녀들 교육하는 법까지도 우리완 다를 수밖에 없다. 우리 딴엔 잘 도와준답시고 한 일이 걱정거리가 되어 얼떨결에 큰 소리를 듣게 되는가 하면 나아가서는 주의 아닌 주의도 듣게 되는 수가 있다. 비록 그것이 세대 차든 문화의 차이든 그런 상황을 지나서 생각해 보면 일단 서운해지는 건 사실이다. 자식 앞에 무슨 자존심이냐 하겠지만 그래도 버티고 싶은 기본 자존심은 누구에게나 있는 법. 그렇다고 일일이 가르쳐야 한다며 감정을 드러내 놓으면 잔소리가 되고, 참아주고 기다려주며 마냥 좋기만 한 부모노릇하기엔 힘에 부치고... 그래, 이젠 아프지 않고 우리 한 몸 잘 살아 주는 것만도 자식을 돕고 든든한 울타리가 되어 주는 것이지 싶은 마음으로 속을 다스리긴 해도 어딘지 석연찮은 구석이 있는 건 어쩔 수가 없다.
되짚어 보면 우리도 그랬었다. 손주에 얽힌 문제만 하더라도 다를 바가 조금도 없다. 알게 모르게 나를 키워 주신 내 어머니의 육아법을 몰아 내친 적이 얼마나 많았었는지. 밥을 씹어 먹이면 엄마!하고 버럭 소리치며 수저를 빼앗았고, 옷을 둥둥 껴 입히면 그 자리에서 홱 베껴버리기도 했으며, 반듯이 눕혀 놓은 애를 홀까닥 엎어놓으며 뒤통수가 예뻐야 한단 말이야 했었다. 그땐 나의 그 짓에 어머니가 서운해 할 것이라는 생각은 꿈에도 해 보지 않았었다. 서운함이 대 물림 된 것이니 이제는 참고 기도해 줄 때가 되었나 보다. 자식이 낳은 자식 앞에서 내 어머니 같은 어머니가 되는 법을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