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부엌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음식 만드는 걸 굉장히 즐긴다는 얘기는 아니다. 음식 만드는 걸 싫어하지도 않지만 무엇보다 부엌이란 공간이 그냥 좋을 따름이다. 남의 집을 가도 부엌부터 유심히 보게 되고, 인테리어 잡지를 볼 때도 부엌만 골라 들여다보며 드림키친을 꿈꾼다. 지금 살고 있는 집도 구지 선택한 이유를 대라고 하면 ‘부엌이 좋아서’ 다. 이렇다 보니 부엌이 없는 집은 집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사는 사람이다. 그 무의식의 가닥은 모르긴 해도 부엌이란 장소와 연관된 따스함, 정, 유쾌함, 뭐 이런 류의 정서와 맥이 닿아있지 않나 싶기도 하고, 단순한 해석을 내리자면 그냥 먹는 게 좋다.
나 어릴 적만 해도 부엌은 내게 그리 낭만적인 장소가 되진 못했다. 초라한 옛날식 한옥 집에서 살았던 나는 부엌, 하면 부뚜막이 먼저 떠오르고, 그 위에 노상 얹어져 있던 시커먼 무쇠 솥 단지와 여기저기 땜질한 후질근한 양은 냄비들, 드르륵 부엌문을 열고 들어설라 치면 나만큼 놀란 생쥐들이 후다닥 줄지어 달아나던 음습한 장소였다. 낭만은커녕 위생관념조차 없던 부엌이었지만, 그래도 끼니 때마다 그곳으로부터 흘러 나오는 경쾌한 도마소리, 맛난 음식 냄새는 어린 내게 행복한 느낌이란 게 뭔지 알게 해 주었다. 집을 가장 집답게 하는 장소, 그러니까 부엌은 엄마밥=사랑 이라는 등식으로 나에게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고향 이미지의 원천인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킬킬거리며 즐겁게 요리를 한다는 것, 그렇게 손수 요리한 음식을 나누며 정겨운 대화도 함께 나눈다는 건 참 살 맛나는 일이다.
‘사내녀석이 부엌에 들어오면 XX 떨어진다’는 엽기적인 말을 듣고 자란 세대라 그런지 남편은 음식 만드는 걸 두려워(?)한다. 하지만 큰 아이는 다르다. 사내 아이인데도 Food채널을 즐겨보고 나 못지 않게 부엌도 사랑한다. 음식을 만들 때 마다 어느새 옆에 다가와 재료를 들여다보고 만져보고 썰어보는 열 세 살의 사내 아이가 도움보단 솔직히 걸리적 거리지만, 평소 말 없는 녀석과 대화를 나누기는 안성맞춤인 시간이다. 음식을 만들고 함께 먹는 게 생략된 집은 생각보다 아주 많은 걸 생략하며 사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내 친구는, 지금까지 자신이 본 풍경 중에 가장 아름다웠던 풍경을 들려주었는데, 된장찌개가 놓인 동그란 식탁에 네 식구가 둘러 앉아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식사하는 모습이었다면서, ‘세상에 그렇게 아름다운 풍경’을 자신도 매일 연출하며 산다는 게 새삼 행복하다고 말했었다. 그 친구의 말을 듣고 보니 하필 ‘밥 먹는 입’이라는 저 차원적인 표현으로 가족을 말했을까 싶었던 ‘식구’란 단어가 단박에 아주 고차원적인 의미로 내게 다가왔다.
Do you cook at home? 이 나라에 와서 종종 받는 질문이다. 처음엔 질문이 하도 이상해서, 당최 쿡을 안 한다는 이 나라 여자들은 대체 집에서, 아니 부엌에서 뭘 하나 의아했다. 오븐에서 빵 굽는 냄새를 그리워하는 이 나라 사람들의 정서도 우리와 그리 다르지 않을 텐데 말이다. 하긴 한국도 요즘은 마찬가지 추세라고들 하는데, 왠지 그런 추세에 선뜻 동조하고 싶지 않은 건 내가 이미 고루한 세대에 접어들어서 일까, 아니면 부엌에 대한 미련을 못 버려서 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