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은 시아버님의 83세 생신입니다.
연세에 비해 무척 정정하신 아버님이셨는데 요즘 들어 부쩍 소화가 안 된다고 하십니다. 근 한 달 째 죽을 드시면서도 그저 괜찮다, 괜찮다 하시는 아버님께 태평양을 사이에 두고 사는 며느리인 저는 고작 ‘병원에 가보셔야지요…’ 라는 말씀 밖에 해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건성으로 알았다 시며 저의 말 중간을 뭉툭 끊으시고는, 아는? 하십니다. 늘 당신의 관심은 당신 자신보다 손주 녀석에게 가 계시는 분입니다.
큰 아이가 세 살 적 1년 여 동안 돌봐주신 적이 있습니다. 퇴근 때마다 지하철 역 안 커다란 기둥 뒤에 아이와 함께 숨어계셨죠. 잠시도 마음 졸이며 숨어있는 것에 익숙치 못한 아이의 방울 같은 웃음소리와 연달아 쉿! 하는 할아버지의 소리만으로 하루의 피곤함이 씻은듯이 날아가 버리곤 했습니다. 고열로 몸이 절절 끓는 아이를 하루종일 업고 계셨던 다음 날, 고질병인 허리 통증이 도지셔서 한달간 누워계셔야만 했을 때도 당신은 노심초사 아이 걱정 뿐이셨네요. 지금도 아이는 그 때의 할아버지 사랑을 기억합니다. 그 아이 평생 써먹을 사랑 밑천을 톡톡히 대주신 할아버지의 사랑을 말입니다.
아이가 할아버지를 사랑하는 만큼 저도 시아버님을 참 좋아합니다.
아버님이 이러 저러해서가 아니라 그냥 아버님을 뵈면 저는 참 좋습니다. 아버님에게는 유쾌한 언발란스가 있습니다. 하얀 머리에 까맣고 진하디 진한 눈썹이 그 하나요, 어눌한 언변에 날렵한 손 솜씨가 또 하나입니다. 그 분의 언발란스도 사랑하지만 제가 그 분을 특별하게 생각하는 건 그 분의 일치성입니다. 아버님의 평소 말씀은 삶의 현장에서 맞아 떨어집니다. 아니, 말씀보다 삶으로 훨씬 많은 것을 보여 주시는 분입니다. 알기는 쉽지만 살기는 힘든 데 아버님은 그렇게 사십니다.
아버님은 저를 잘 울리십니다.
참 눈물은 희한한 것이더군요. 기뻐서도 슬퍼서도 화가 나서도 감동해서도, 같은 눈에서 다른 눈물이 시도 때도 없이 나옵니다. 시집이란 걸 와서 온갖 종류의 눈물을 섭렵했건만 그 중에서도 제게 있어 감동의 눈물은 아버님 특허입니다. 속이 좁아 터진 막내 며느리인 제가 나중에, 아주 나중에 그것도 우연히 당신의 진심을 알고 소위 감동의 눈물을 흘린 적이 꽤 여러 번 있으니까요. 아버님은 아마도 제가 그걸 알고 있다는 것도 모르고 계실 겁니다.
아버님은 그렇게 사십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바보처럼 산다는 소릴 들어도 한결같이 꿈쩍도 않고 제 길을 걸어 가십니다.
아버님이 오래 사시면 좋겠습니다.
아직 정정하시지만, 언젠가는 거동마저 불편하실 때가 올 테지요. 그래도 오래 사시면 좋겠습니다. 사람이 산다는 게 뭔지, 부모라는 게 뭔지, 인생을 아름답게 마무리 한다는 게 뭔지, 말이 아닌 삶으로 보여주시는 제 인생의 롤 모델이시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