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피니언]고로쇠의 길

2008-07-10 (목)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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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학재 (워싱턴문인회)

고향, 등 뒤로 하고 태평양 건너 온 나라
낯선 땅에 다시 태어나던 날, 그날부터
새벽을 깨우던 얄궂은 시계가 삼십년을 울더니
이젠 조용히 지친 잠 을 자는구나.

눈 내리는 새벽 비바람 어두운 길
거북이처럼 땅만 보고 걸어온 발자국
벙어리, 귀머거리, 소경으로 살아온 이민자의 삶
허리 굽은 칠십 노인 고로쇠가 되었습니다.

외로움에 찌든 그리움
매운 머슴살이
땀과 눈물과 인내가 이민자의 길이라고 배우면서
세월 따라 구름 따라 열심히 살았습니다.

품삯으로 새경 몇 섬 받아 들고
빛바랜 은퇴 명찰 조용히 달았습니다.
귀여운 손자 손녀 고사리 손으로
할아버지 죽데기 가슴에 꽃을 달아 줍니다.

안개 거치는 산책길
빛 내림받는 길목에 이름 석 자 걸어 놓았으니
까마귀 그 이름 물어가는 날 까지
단풍같이 노을같이 아름답게 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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