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꽁트) 거리의 풍경

2008-06-30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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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동 휘(소설가)

“언니. 오늘 뭘 할거야?”

순지는 남편 출근하고, 아들 학교 보내놓고 한가롭게 창가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있는데 순미의 전화를 받았다.


“글쎄. 특별한 일 없어. 왜?”

“그럼 지금 집으로 간다.”

순지는 전화를 끊고 보던 신문을 넘긴다. ‘계 파동’ 큰 활자로 찍혀 있었다. ‘이민의 꿈이 깨어진 사람이 또 생겼구나.’ 혼자 중얼거리면서 신문을 넘기는데 현관 벨 소리가 났다. 순지는 컵을 놓고 문 앞으로 갔다.

“빨리 왔네?”

“언니. 커피 마시고 있었어? 난 먹을 복은 있나봐.”

“커피 줘?”

순지는 부엌으로 들어갔다.


“같은 커피인데도, 언니 집 커피는 맛과 향이 좋아.”

“그래. 오늘은 무슨 용무야?”

순미는 언니 순지 집에 오면 꼭 뭐를 요구하였다. ‘블라우스가 마음에 드는 것이 있는데 내 돈주고 사는 것보다 언니가 사주면 자랑도 하고 좋은데.’하면서 애교를 떠는 순미의 청을 거절 못하였다. 학교 다닐 때는 그렇다 치고, 결혼 한 후에도 가끔 그랬다. 그렇다고 경제적으로 어려운 형편도 아니다.

“언니. 오늘 거리 구경 나가요. 점심은 내가 팍 쏠 거니까.”

“가만, 오늘 해가 어느 쪽에서 뜬 거야?”

순지는 엉덩이를 들고 밖을 내다본다.

“언니. 이 동생도 대접할 줄 알아.”

“그래. 좀 자세히 말해봐. 무슨 일 있지?”

“그냥 언니하고 거리를 한번 걷고 싶은 것 뿐이야.”

“단순히 그거야?”

“왜. 가끔 혼자 있고 싶고, 누구와 이야기도 하고 싶을 때가 있잖아.”

“너, 장 서방하고 무슨 일 있지?”

“그런 일 없으니까 걱정 내려놓아요.”

순지는 동생 순미를 빤히 쳐다본다. 순미의 얼굴에 회색 구름은 아직 끼지 않았다.

“그래, 네가 원하니 그렇게 하지.”

순지는 컵에 있던 커피를 홀짝 마시고 일어났다.

순지와 순미는 엘 카미노에 있는 제일식품점 앞 넓은 파킹 장 한쪽에 차를 세우고 내렸다.

“언니. 우리 저쪽으로 가.”

각 나라 인종들이 걷고 있었다. 다들 어디로 무엇을 하러갈까.

“언니. 이렇게 사람 속을 걷다보면 우리가 생각지 못한 것도 볼 수 있고, 사람 냄새도 맡고 참 좋다.”

“그래, 산책길에서 느끼지 못한 것을 새롭게 느끼는 것 같다.”
순지는 그동안 차를 타고 이 거리를 갔다왔다 했지만 걸어 보기는 처음이다.

“언니, 느낌이 어때?”

“그동안 말은 들었지만 한인들의 생활상을 피부로 느끼는 것 같다.”

순지는 중부 지방에서 남편이 공부할 때 완전 백인들 속에서 살았다. 그러다 이곳으로와 3년이 되었지만 한국 사람들과 쉽게 어울리지 못하고 있다. 순지는 이곳을 처음 방문한 여행자처럼 어리둥절하여 여기저기 휘둘러본다.

“순미야. 이런 말 알지? ‘등잔 밑이 어둡다.’고 한말이 나한테 한 말 같다.”

“왜 그런 생각했어?”

“이 지역에 살면서 한인들이 이렇게 성장한 줄 몰랐으니까. 앞으로 한인타운에 자주 나와야겠다.”

“이제 한인들도 성장했단 말이야. 그런 뜻에서 저 순두부 집에 가서 점심 먹어.”

순지와 순미는 식당으로 들어갔다. 둘은 해물 순두부를 먹고 나왔다.

“저쪽으로 가 커피 한잔해”

쇼핑몰엔 골프용품가게, 양복점, 보석상, 미장원, 월남 국수집도 있었다. 건물 끝에 있는 커피 집에 들어갔다. 의자에 앉아서 한가롭게 잡담하는 소리는 한국말뿐이다.

“순미야. 난 한인사회서 물 속의 기름 같은 생활을 한 것 같다.”

“그래. 형부와 너무 거리를 두었지.”

“이제 친구들도 만나고 이쪽으로 눈을 돌려야겠다.”

순미는 순지의 말에 일단 성공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순지는 시계를 본다.

“순미야 가자. 애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이 되었네.”

순지와 순미는 일어나 밖으로 나왔다. 파킹 장 주위에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 속에서 남자의 날카로운 소리가 들려왔다.

“우리 저기 잠깐 가봐?”

“무엇 하는데?”

“재미있는 구경이 있을 것 같아.”

순미는 순지의 손을 잡아 당겨 사람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갔다. 사십대 후반으로 보이는 남자가 육십이 된 남자한테 상기된 얼굴로 검지를 세우고 삿대질을 하고 있다. 나이 많은 사람은 아무런 대꾸도 않고 서 있다.

“야. 곗돈을 타 먹었으면 돈을 내어놓아야 할 것 아니야.”

젊은 사람은 핏대를 올리면서 십 원짜리, 백 원짜리 문자를 써가면서 검지를 흔들면서 계속 소리를 지른다.

“이봐. 먹고싶은 것 못 먹어가면서 모아서 넣은 돈을 네 놈이 먹고 늘어져.”

젊은 혈기에 당장 주먹이 올라 갈 것 같았다. 주위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지만 그 어느 누구도 싸움을 말려 보려고 하는 사람은 없다. 그야 구경 중에서 싸움구경이 최고라고 했는데 누가 말릴까. 나이 많은 남자 곁에 서 있던 여자가 젊은 남자 앞으로 나섰다.

“이봐. 우린 돈을 다 주었어. 그리고 넌 위아래도 모르니. 망나니 같은 자식. 여보, 가요.”

여자는 남편의 손을 잡아끌면서 발걸음을 옮겼다. 젊은 남자 곁에서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거리고 서 있던 여자가 돌아서 가는 여자의 머리채를 잡아 쥐었다.

“남의 돈을 가져갔으면 줘야 할 것 아니야. 이 늙은이야!”

갑작스럽게 머리채를 잡힌 여자는 벗어나려고 용을 썼다. 그때까지 부처 가운데 토막 같이 잠자코 있던 나이 많은 남자가 버럭 소리를 쳤다.

“그 머리채 못 놓아.”

그때 사이렌 소리가 요란스럽게 나면서 경찰 차가 달려오고 있었다. 그러자 모여 있던 사람들이 흩어졌다.

“순미야 빨리 가자. 아이 학교에서 돌아올 시간이다.”

“언니. 이렇게 재미있는 구경을 왜 더 안 봐?”

“순미야. 난 다시는 이 거리에 나오고 싶지 않다.”

‘흥! 호박에 줄긋는다고 수박이 될까?’ 순미는 혼자 중얼거리면서 따라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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