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도덕과 윤리의 가치

2008-06-30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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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소한 부정이 큰 문제 만든다

‘부정행위는 큰 잘못이 아니에요.’
대도시 지역에 있는 대부분의 공립학교는 수많은 인종의 학생들이 섞여서 재학하고 있는 문자 그대로 다민족 다문화 세계이다. 이 같은 다양성이 내포할 수 있는 상이한 가치관 때문에 미국주류 사회와는 물론이고 소수민족끼리도 이해 부족과 포용력 부재로 크고 작은 문제가 생기는 것을 피할 수 없다.
몇 주 전에 시험중 부정행위를 하다가 발각된 학생이 있었다. 불행히도 이 학생은 지난해에도 똑 같이 부정행위를 한 전력이 있어서 이번에는 해당 시험에서 0점을 받는 벌에 더해서 2일 정학을 받게 되었다.
다음날 학생의 어머니가 학교를 찾아왔다. 대단히 화가 나 있었다. 아들이 다른 학생의 답안지를 보고 썼다 해도, 그런 문제 때문에 학교에서 내린 처벌을 이해할 수 없다고 했다. 시험중 성적이 떨어지는 학생이 자기보다 잘하는 친구로부터 도움을 받은 것이 무슨 그런 큰 잘못이냐는 것이었다.
자기네 문화에서는 여유 있는 사람들이 가난한 사람을 돕고, 능력 있는 사람들이 능력 부족한 사람을 돕는 것이 미덕이며, 같은 논리로 공부 잘하는 학생들이 못하는 학생들을 돕는 것은 일종의 상부상조로 보아야 한다는 주장이었다.
계속해서 이 어머니는, “지금 학교 바깥을 나가 보세요. 청소년들이 떼를 지어 다니며, 마약을 하고, 도둑질을 하고 폭행을 하고, 심지어는 살인을 하고 있는데, 그런 아이들을 붙잡아서 벌을 주는 것이 급선무이지, 시험중 친구의 답안지를 보고 쓴 것 같은 ‘사소’한 문제를 가지고 아이에게 큰 벌을 주는 것은 학교에서 할 일의 순위를 한참 잘못 짚은 것이에요”
지난달 마지막 날, 나는 미 육군사관학교 졸업식에 참석하는 좋은 경험을 하였다. 내가 아끼는 제자가 졸업과 함께 육군 소위로 임관되는 영광스러운 자리를 축하하기 위해서였다. 유서 깊고 아름다운 캠퍼스를 구경하다가, 어느 건물 벽에 다음과 같이 새겨진 학교의 모토를 읽게 되었다.
A cadet can not lie, cheat or steal, or tolerate those who do.(생도는 거짓말을 하거나, 속이거나 훔치는 행위를 할 수 없으며, 그런 행위를 저지르는 사람들을 묵인해서도 안 된다.)
현실사회에서 이런 이상적인 원칙을 충실하게 지키면서 사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되겠느냐는 회의는 논외 밖이고, 일단 미국사회를 움직이는 근본적인 윤리와 도덕이 바로 이 짤막한 문장 속에 담겨 있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이처럼 정직과 책임을 강조하는 미국적 가치와 시험중 cheating이 상호협조의 실천이라고 생각하는 가치가 만날 수 있는 지점은 과연 존재할 수 있는지…
얼른 듣기에 이 어머니의 논리가 아주 틀린 논리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 수 있다. 절도와 강도나 폭행·살인을 하는 젊은이들을 학교 안으로 끌어들여서, 벌을 주면서 교육을 시키는 것이, 시험중 부정행위를 한 학생을 벌주는 것보다 더 급하고 중요한 일일 수도 있다.
그러나 한번 절도나 폭행을 한 젊은이들이 어른이 되어서도 그런 행동을 계속할 확률이 큰 것처럼, 한번 lie, cheat, steal한 학생들은 계속해서 lie, cheat, steal할 확률이 큰 것이다.
시험중 부정행위 한 것을 예사로 생각하는 학생이나, 컴퓨터 해킹으로 성적을 조작하는 학생이 수 십년 후 증권회사 사무실에 앉아서 고객들의 재산을 사기 쳐 빼앗는 화이트칼러 범죄자로 될 가능성은 이런 행동을 하지 않는 학생들보다 크다.
시험중 부정행위를 ‘사소한’ 문제로 보는 학부모의 생각은 다분히 위험한 사고라는 결론을 내리는데 주저하면 안 될 것이다.

김 순진
<밴나이스 고교 카운슬러·교육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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