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피니언]적을 알고 싸우자

2008-06-27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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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현길 지리학 박사 전 연방 공무원

한국전 59주년 기념식서 워싱턴의 노병들이 6.25 전쟁의 의미와 교훈을 상기하는 행사를 가졌다. 평화와 자유를 위해 한반도의 비극의 비참한 역사적 반복이 없기를 바랐다.
국시가 자유민주주의면서도 촛불 광풍의 숫자만 늘고 한 달 동안 지속되는 한반도의 정세는 실망적이었다. 민초들의 울부짖음에 소홀했던 청와대는 ‘신문고’의 안타까운 항쟁에 국가적 해법을 제시하지 못했다. 국정마비에 국가안보는 위기에 처했고 북핵문제나 국제정세에 당황한 모습이었다.
민심은 돌아서고 태릉의 육군사관학교 여론조사는 “북한보다 미국이 주적이다”라는 반응을 보였다.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는 “(한국의) 안보의식은 엉망이다”라고 23일에 통탄하였으며, 동북아 평화안보포럼의 야당 의원들도 “군 미필자를 대통령으로 뽑는 나라가 되다보니 생긴 일이다”라고 빈정댔다. 한미동맹 발전방향을 토론하는 태도에 놀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방한 계획도 무산될 조짐이다. 북경과 동경을 왕래하면서 준비한 극동평화외교는 서울이나 제주도 방문을 취소할 의사를 밝히면서 “이 대통령에 대해 그다지 감동하지 않고 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한편 노동당 기관지인 북한신문은 22일 “북남 관계가 최악의 위기에 달했으며 군사적 대결 상황”이라고 갈파했다. 김숙 한반도 평화교섭 본부장은 핵보고서 제출 뒤 모니터링 방안에 대해 팩스로 “2단계 불능화 조치 11개 단계 가운데 8개가 완료되고 3개가 남아있다”고 대답했다. 청와대는 이런 상황에서도 “북한이 남한을 배제한 채 미국과 직거래하는 것은 가능하지 않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다음날 북한은 미국에 방대한 1만8,822쪽의 일곱 상자 분량의 핵 가동 기록을 전달했다. 청와대는 실언을 한 것이다. 더 난감한 사정은 육사생들이나 학생, 촛불 장난꾼들이 미국을 ‘적’이라고 성토하는 역사적 미스터리인 것이다.
‘포린 폴리시’ 7-8월 호는 세계 최악의 지도자로 1등에 미얀마의 탄 슈웨 장군, 2등에 북한의 김정일 위원장을 꼽고 3등을 수단의 오마르 핫산 알 비시로 발표했다. 반미가 올곧은 판단이라면 유학생, 영어 연수생, 조기유학으로 비행기마다 만원일 필요가 무엇일까. 왜 평양에 가기보다 뉴욕을 향하는 것일까. 동포들의 불친절을 알면서도 밀어닥치는 방문객들의 의도를 이해하기 힘들다.
적은 눈앞에 있다. 6.25 한국전쟁으로 총 600만 명 사망, 500만 명 월남가족, 1,000만 명 이산가족에 현재도 휴전상태일 뿐이다. UN의 참전 17개국 전사자들까지 한국인들의 반미정서를 납득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전 기념식에서 수많은 애국지사, 국군장병, 고아, 과부들의 숭고한 입지가 초라해질 수는 없는 것이다.
미국은 이미 전시작전통제권을 2012년에 전환하며 미8군 사령부도 하와이로 이전할 계획이다. 주한 미군은 한반도 방어에서 ‘태평양 기동군’으로 일본이나 싱가포르 등지에 활용될 것이다. 한반도의 안보 책임은 한국군의 몫이 되고 만 것이다.
적을 알면 자유도 쟁취할 수 있다. 하바드 대학 졸업식서 해리포터 시리즈의 작가 조앤 롤링이 축사로 “삶의 가장 밑바닥이 인생을 새로 세울 수 있는 가장 단단한 기반”이라고 말했다. 위대한 결심은 경청해볼 만한 교훈이 된다. 적도 모르면서 선진개혁은 힘이 든다. 비장한 자세로 우리는 6.25 한국전에서 배고픔을 배웠다. 2세들에게 “그 때의 적은 미국이 아니었다”고 알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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