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피니언] “어느 여인의 죽음”

2008-06-16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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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이 여인의 죽음이 쉽게 잊혀지지 않는 이유가 무엇일까? Deborah Palfrey라는 이 여인은 자살로 생을 마감했는데, 매춘 업을 운영해 “워싱턴 마담“이라 불리며, 많은 정치인들이 이 매춘 업체를 이용해서 잘 알려진 여인이라고 신문에서 읽었다.
이 자살 사건은 어머니 주일 며칠 전에 발생했다고 기억되는데, 죽기 얼마 전 재판 시에 옆에 서 있던 그 여인 엄마의 슬픈 표정의 사진 때문에 쉽게 잊혀지지 않는 것일까? 비록 세상에서는 손가락질을 받았어도, 이 딸의 출생은 엄마에게는 큰 기쁨을 주었을 것이며, 무엇보다 소중하고 사랑했던 딸이었을 것이다. 어머니날이 가까운 때에 헛간에서 스스로 목을 맨 딸을 발견한 엄마의 아픈 심정이 자꾸 생각난다.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지워지지 않을 깊은 상처를 주고 떠나면 안 되는데.
또한 이 사건이 쉽게 잊혀지지 않는 것은 Monica Hesse라는 분이 워싱턴 포스트에 썼듯이 상원의원 David Vitter를 비롯해, 이 여인이 공개한 돈깨나 있고 권력 있는 고객들은 아무 상처도 없이 지금도 버젓이 고개를 들고 다닐텐데, 이 여인의 삶은 비극으로 끝난 부조리 때문이기도 하다.
이 여인은 이미 1990년대에 비슷한 죄목으로 18개월의 감옥살이를 했는데도, 정신을 못 차리고 매춘 업을 계속하다가 6년 - 8년형을 예상하고, 단 하루도 감옥에서는 더 이상 살 자신이 없다고 그렇게 생을 끝냈다. 감옥을 그렇게 두려워했던 이 여인이 그 일에 손을 떼지 못한 것이 참 이해할 수 없는 부분이다. 정말 그녀의 주장대로 판단력을 가진 성인들이 성적 쾌락을 위해 값을 치르며 거래하는 것이 형사적 형벌을 받을 일은 아니라고 굳게 믿은 것일까? 여지없이 타락한 인간의 모습이다.
그런데, 이 여인의 사건을 생각하면 어쩐지 간음하다 현장에서 붙잡혀 온 여인을 돌로 쳐죽이려는 성난 군중에게 예수가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돌로 치라” 하신 성경말씀이 생각난다. 정말 그렇다. 살아갈수록 우리 안에는 선한 것이 없는 죄인들임을 절감하게 된다. 비록 그렇다 해도 우리 모두는, 이 Deborah Palfrey라는 여인을 포함해 존귀한 존재이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이다. 필립 얀시의 책 “Amazing Grace”에 나오는 다음 이야기는 이 사실을 다시 한번 되새기게 한다. <영화 “엉겅퀴 꽃”의 한 장면에서 잭 니콜슨과 메릴 스트립이 분한 두 사람이 눈밭에 쓰러져 있는 늙은 에스키모 여인을 우연히 만난다. 여인은 술에 취한 것 같다. 역시나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취한 두 사람은 여인을 어떻게 할지 고민한다. 니콜슨이 묻는다. “주정뱅이야, 아니면 부랑자?” “그냥 부랑자 에요, 평생 그랬죠.” “그 전에는?” “알라스카 창녀였어요.” “평생 창녀로 살지는 않았을 것 아냐? 그전에는?” “몰라요, 그냥 어린아이였겠죠.” “어린 아이라, 대단하군. 부랑자도 창녀도 아냐. 대단한 거야. 안으로 들이자고” 두 방랑자는 은혜의 렌즈로 에스키모 여인을 보았다. 사회의 눈에는 부랑자나 창녀밖에 보이지 않지만 은혜의 눈에는 “어린아이”가 보인다. 비록 심하게 훼손되었으나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을 품은 어린아이로.>
만일 우리가 이러한 렌즈로 자기를 포함해 모든 사람을 본다면 이 세상은 좀 더 살맛 나는 곳이 될 것이다. 또한 결단코 이 “워싱턴 마담“과 같이 인생을 함부로 살지는 못할 것이다. 그렇기에 미국 내에 매춘 한인 여성이 5,000여명이나 된다는 기사는 나를 더욱 슬프게 한다.

박찬효
FDA 약품 심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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