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풍습과 언어 / 폴 손

2008-06-10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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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손 칼럼
sfkt@paulsoh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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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자신의 풍습에 따라 생활하고, 그 생활 속에서 의사 소통에 필요한 언어를 만들어 낸다. 고등학교 영작 시험을 보는데, 인생 칠십 고래희 (人生 七十 古來稀: 70세 되도록 사는 사람은 드물다)를 영어로 옮기는 문제가 있었다. 옛날 이 말이 나왔을 때에는, 동양인들의 수명이 서양인의 수명에 비해 짧았었다. 그러므로, 서양의 냄새를 내기 위해서 영어로는 “백세까지 사는 사람은 드물다 (Few people live to be one hundred years old.)”라고 표현해야 된다고 배웠다.

서양인들이 한국을 처음 방문했을 때, 자신들에게 생소한 것 중에서 친구들이 술에 취해 어깨동무하면서 서로 갈 지 (之)자로 걷는 모습이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다. 우리는 그렇게 정을 쌓아가면서 산다. 그래서 영어로 옮기기 어려운 말 중에는 “끈끈한 정”이 있다. 우리들만의 풍습에서 나온 말이다. 한데, 우리 풍습에서 버려야할 것도 있는 것 같다. 여기 우리가 자주 쓰는 세 가지의 말들을 살펴본다.

(1) 내가 누군 줄 알고…
제 잘난 멋에 살기는 하지만, 남에게 그토록 자신을 알리고자하는 이 말은 생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한번은 인생의 큰 풍랑을 당하고 있었다. Costco 주차장에서 기도의 달인이라고 할 정도의 사람을 만났었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다, 기도 부탁을 하려는 데, 차에 둔 아이스크림이 녹으니 빨리 가봐야겠다며 서둘러 차로 달려갔다. 이 때, 비로소 나 자신이 그 사람의 5불짜리 아이스크림보다 못하다는 생각을 했다.


그저 낮게 살면 더 낮아질 염려는 없지만, 높게 살다 낮아지면 오히려 홧병에 살게될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누군 줄 알고..”라고 하기 보다는 “몰라주니 감사합니다”는 것이 속 편한 생활이 될 것이다.

(2) 남보기에…
한국인은 너무 남을 의식해서 산다. 남을 비판할 때, 자신의 판단으로 비판하므로 남들도 자신과 같은 판단 기준을 가진 것으로 착각한다. 게다가 조상들이 오랜 양반 제도에서 살아온 터라, 천한 것들이 자신을 천하게 볼까 두려운 자가당착적인 사고 방식으로 산다.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학교 선배가 구경 시켜 주겠다며 찾아와서는 “차가 이 정도라…” 하며 자신의 작은 차를 부끄러워하는 눈치를 보였다. 미국서 똥차를 운전한다며 위로했던 적이 있었다. 너무 남을 의식하며 사는 것은 자신을 피로하게 만든다. 미국에서 사는 우리들은 이 피해망상적인 사고 방식에서 해방되어야 하겠다.

(3) 자랑은 아닙니다만…
정말 자랑을 하고 싶으면 자랑을 해야하겠다. 겸손의 탈을 쓰면서까지 자랑을 해야겠다면, 차라리 침묵이 자신을 더 빛나게할 것이다. 한인 사회를 위해 헌신적으로 봉사하신 어느 분을 개인적으로 잘 알고있다. 그런데, 그가 한인 사회를 위해 한 일들을 모두 다른 사람을 통해 들었다. 그는 그가 한 일에 대해 입도 벙긋하지 않았다.

이 세 귀절들을 안쓴다면 우리네 사고 방식도 많이 달라질 것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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