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타향살이 몇 해던가
2008-06-04 (수) 12:00:00
이번에 한국 가서 부흥회를 인도하면서 둘째 날 저녁에 창세기 28장을 본문으로 ‘야곱의 금의환향’이라는 설교를 했다.
그러자니 자연히 힘들고 괴로웠던 그 사람 야곱의 타향살이 21년을 설명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야곱은 이삭과 리브가 사이에 태어난 쌍둥이면서 차남이었다. 장자권을 장남에게만 상속해주던 당시라 억울하게 장자권을 잃은 야곱은 어찌 어찌하여 장자권을 얻는다. 그러자 반복할 수도, 나누어 가질 수도 없게 된 형 에서의 불만이 극에 달하게 되었고 에서의 질투가 말이 아니었다. 하여, 야곱이 더는 견딜 수가 없어서 결국에 고향 브엘세바를 떠나 외삼촌 라반이 사는 하란으로 이주 한다.
혈육이 있다지만 물설고 낯도 선 땅 하란에서 돈 한 푼 없는 야곱의 생활은 배신, 억울함, 살을 깎는 노동, 바로 그것이었다. 그러나 벧엘의 체험 때문에 만난을 무릅쓰고 믿고, 참고, 견디어내더니 마침내 금의환향 한다는 해피엔드의 이야기를 하는 중에 워싱턴에도 한국 채널 TV가 있는데 인기 있는 프로 중 하나가 구수하고 구성진 아나운서의 사회로 진행하여 고국 생각을 물씬 나게 하는 ‘가요무대’라는 프로로 교포들이 많이 시청하며 나도 가끔 본다는 이야기를 하였다.
그랬더니 모 산업진흥재단 관리부장인 교인이 식사를 대접하면서 ‘다시 듣고 싶은 그 때 그 노래’ ‘정든 가요’ ‘가요무대’가 담긴 CD 여러 장을 선물로 주어서 가지고 왔다. 어제 그 CD를 들었다.
거기에는 ‘눈물 젖은 두만강’ ‘삼팔선의 봄’이 있고 ‘목포의 눈물’이 있었고 ‘타향살이’가 있다. 옛날을 생각게 한다. ‘눈물 젖은 두만강’을 들으니 지금은 고인이 되신 외삼촌이 생각난다. 일제시대에 징용을 피하시느라 만주를 헤매 다니신 경험이 있어 ‘눈물 젖은 두만강’만 나오면 눈을 지그시 감으시고 부르시던, 나를 그렇게 사랑해주시던 하나밖에 없는 외삼촌이 그립다. ‘삼팔선의 봄’은 내가 군목으로 시무하던 때 6.25 전쟁을 겪었던 포병 사령부 고참 주임상사가 회식 때면 18번으로 부르던 노래였었다. ‘목포의 눈물’의 사연도 있다. 내가 남미에서 선교사로 있을 때 고향이 호남이던 여자분이 야외예배에 친구를 따라와 친교시간에 이런 노래를 불러도 되느냐고 양해를 구하고서는 애절하게, 그리고 수줍어하면서 ‘목포의 눈물’을 구슬프게 부르던 생각이 난다.
‘타향살이’가 들려온다. “타향살이 몇 해던가 손꼽아 헤어보니 고향 떠난 십여 년에 청춘만 늙고…” 고복수 선생의 노래다. 해외동포 애창가요 1순위가 이 ‘타향살이’라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우리는 모두 타향살이 나그네다. 윌 가요에는 한이 서려있다. 그 한은 아마도 조국의 해방이요 남북통일이었으리라. 그리고 이제도 또 무엇인가 아직 이루어지지 않는 그 무엇인가를 기다리며 한스런 노래를 여전히 부르고들 있다. 희망을 버리지 않으려고 노래를 부르고 있나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