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교단일기/천경주(상항한국학교 교사)

2008-05-23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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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승은 어디에나 있다.

“나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평범한 선수였다. 남들만큼 뛰어난 기술도 좌중을 휘어잡는 리더십도 없었다. 남들 눈에 띄지 않으니 ‘깡다구’ 하나로 버텼고, 남이 보든 안 보든 열심히 하는 것이 미덕인 줄 알았다. 덕분에 나는 대표 팀에 합류했지만 여전히 주목받지 못하는 선수였다.

다리 부상으로 시합에 나갈 기회를 놓쳐 풀 죽은 채 텅 빈 탈의실에 혼자 남아 있는데 감독님이 통역관을 대동하고 성큼성큼 나에게 다가와 영어로 말씀하셨다. “박지성씨는 정신력이 훌륭하데요. 그런 정신력이면 반드시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있을 거라고 말씀하셨어요.” 통역관의 얘기를 듣고 뭐라 대답도 하기 전에 감독님은 돌아 나가셨고 나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늘 멀리 있는 분 같았는데, 그런 감독님이 내 곁에 다가와 내 정신력이 훌륭하다는 말을 했다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힘이 솟았다.


그 말은 ‘축구의 천재다‘라는 소리를 듣는 것보다 내 기분을 황홀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월드컵 내내 그날 감독님이 던진 칭찬 한마디를 생각하며 경기에 임했다. 내 정신력이면 분명 훌륭한 선수가 될 수 있을 거야. 감독님의 한마디는 내가 살아갈 나머지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지금은 세계적인 축구선수가 된 박지성 선수가 그의 숨은 열정과 노력을 알고 키워준 히딩크 감독에 대해 적은 글의 일부이다. 그는 무명이었던 자신에게 많은 기회를 준 감독님이 어디선가 자신을 지켜보며 격려하고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비록 그들 사이에 많은 대화가 오고가지는 않았을 것이지만 서로에 대한 강한 신뢰가 있었다는 것은 틀림이 없는 것 같다.

자신의 능력을 믿어 주는 사람이 한사람만 있어도 인생은 살 맛이 나는 법이다. 더구나 그 분야에서 이미 뛰어난 능력으로 인정받는 사람이 자신의 재능과 열정을 알고 믿어준다면 더 할 나위 없이 힘이 나지 않을까?

스승이란 ‘나를 가르쳐서 인도하여 주는 사람’ 이라는 뜻이다. 아직 어리고 미숙하거나 어떤 일에 대해 초심자는 누구나 가르침을 주는 스승이 필요하다. 가르침이란 단순히 지식이나 기술의 전수가 아니라 정신적 유대관계 속에서 자연히 스승의 닮은꼴을 재창조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젊은이는 자신을 이끌어주고 격려해 줄 사람이 필요하고, 연륜 있는 이는 싹이 보이는 인재를 찾아 그의 재능이 만개하게끔 도와주고 싶어 하는 것은 한 세대와 그 다음 세대가 이어가는 자연의 모습이다. 누구나 일생을 살아오면서 자신에게 힘과 용기를 북돋아 주고 바른 길로 이끌어 주는 사람을 만난다. 하지만 그 만남은 내가 어떻게 받아들이는가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항상 듣던 칭찬이라고 대수롭지 않게 여긴다든가 다른 속셈이 있어서 그러는가 하고 의심해 버린다면 나의 잠재력을 일깨울 기회를 스스로 버리는 셈이 된다.

나의 능력을 믿고 성장을 기뻐해주는 분이 있다는 것 그리고 그 은혜에 힘입어 이전보다 훨씬 큰 모습으로 보답해 드리는 이 스승과 제자의 관계처럼 순수한 것은 없다. 아마 스승과 제자의 관계는 무수한 형태의 인간관계들 중에서 가장 순수하고 진보된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스승은 내 마음 속의 큰 바위 얼굴이다. 그 분은 이미 나의 롤 모델이고 비록 지금 곁에서 뵙지는 못 할 지라도 그 분을 생각하면 힘이 나고 그런 과정 속에서 서서히 스승을 닮아간다. 요즈음은 선생님을 비하하는 말이 많이 들리고 더구나 스승이 어디 있냐라는 극단적으로 회의적인 세태가 우리를 우울하게 한다. 하지만 스승은 어디든지 있다.

자신을 사랑하며 긍정적이고 진취적인 사고를 가진 이라면 여러 사람에게서 스승을 발견한다. 이 사람에게는 이것이 배울 점이고 저 사람에게는 저것이 배울 점이다. 스승이 없다고 푸념하기 전에 계산적이고 눈앞의 이익만을 따지는 내 자신을 먼저 살펴보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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