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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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한인산악회 전미선씨 아르헨티나 아콩카구아 등정기<7>

2008-05-23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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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미한인산악회  전미선씨 아르헨티나 아콩카구아 등정기<7>

드디어 정상이다. 아콩카구아 산정에서 기념촬영을 하는 등반대.

재미한인산악회  전미선씨 아르헨티나 아콩카구아 등정기<7>

정상에서 누워버린 전미선씨.

“힘내라”외침에 한발, 한발… 마침내 정상

1-24-08
햇살을 봐서 이제 살았다 했더니 지금부터는 또 크램폰을 장착하고 걸어야 한단다.
바람골이 끝났나 했는데 그게 아니었나보다. 가이드가 뒤돌아보면 가글을 쓴 내 눈이 보이지 않을 것이 뻔하지만 애처로운 눈으로 고개를 도리도리 하며 못가겠다고 표현을 하면, 본 척도 안하고, 숨을 크게 쉬고 천천히 따라오라는 소리뿐이다. 가도 가도 끝이 없는 바람골에 나를 선두에 세운 부담감까지 있어서 나로 인해 정상 가는 것에 차질이 생길 것 같은 맘이다. 죄송한 맘이지만 난 뒤쳐져서 천천히 가겠노라 선언하고 3사람을 먼저 가게 했다.
가이드 에스테반이 나만을 위해 가이드를 해주었다. 더 늦은 걸음으로 숨을 크게 쉬어라, 천천히 한 발짝씩 걸어라, 물 마셔라 과자 먹어라, 잘하고 있다는 등 그렇게 한 발, 한 발 움직일 수 있도록 정말 열심히 도와주었다.
아직은 까마득한 곳에(이곳 이름이 ‘GATE’라고 한다) 여러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면서 저기 가면 편히 쉴 수 있다며 기운을 내라고 한다. 겨우 도착한 게이트에는 바람이 없는, 마지막으로 쉬는 곳인양 평평한 모양새를 쉼터로 많은 사람들의 무리들이 수고했다는 표정으로 반겨주는 듯하다. 고생한 후의 안락함이 느껴지는 그런 분위기였다.
너무 늦은 탓에 한 이사님과 학선씨는 벌써 출발을 했고 최선생님은 고소 탓에 저와 속도를 맞추기 위해 저를 기다리시고 계신 것이다. 난 정말 여기까지만 오르려 결심했건만, 그래서 성공한 정상팀 올 때까지 기다리려고 했는데, 최 선생님이 여기까지 왔는데 정상을 가야지 하신다.
가이드는 물과 과자 하나 달랑 먹이고는, 우리 배낭을 뺏어서 돌로 묻어놓고 저기 보이는 게 정상이라며 일어나라고 한다. 40분이면 갈 수 있다고 한다. 이 40분이 가이드의 걸음걸이로 그렇다는 걸 이때는 생각을 못했다.
최 선생님도 계시니 마지막 용을 써보자 하고 가이드 쫓아 출발을 한다. 길이 온통 바위길에 다리가 얼마나 무거운지 크렘폰을 빼면 안되겠냐고 요구를 해도 가끔 얼음이 섞여 있는 바위길이라 절대 못 빼게 한다. 세상에 태어나 이렇게 천천히 걸어갈 수도 있구나란 생각이 들면서, 하지만 이게 내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속도라는 것에 정말 죽을 힘을 다해 기어 올라갔다. 정상이 가까워 오니 학선씨와 한 이사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힘내라고, 십자가 여기 있다고 외치는 소리가 가까운 거리에서 들리고 보이기는 하는데 왜 이렇게 발걸음이 안 떨어지는지… 정말 죄 없는 등산화와 크렘폰 탓을 하며 원수 같은 바위들, 한발, 한발 전진을 한다.
겨우 겨우 도착한 정상, 이곳에 오면 감동의 눈물 흘리며,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포옹하고 감격을 나누리라 기대했는데 눈물은 커녕 십자가도 확인 안하고 대자로 누워버렸다.
최 선생님께서는 드신 것도 없는 속에 모든 걸 다 토하셨다고 한다. 정말 죽을 고생이 이런 것이구나 라는 걸 경험해 본 것 같은 느낌이다.
이런 생각도 잠시, 산에 구름이 깔리고 있었다. 날씨가 나빠질것이라는 예측에 우리는 긴장하고 정상에서의 사진 한 장 겨우 찍고, 바로 하산을 시작했다.

HSPACE=5

귀국, LA 공항에서.

죽을 고생이라는 건 산을 오를 때만 느끼는 것인줄 알았다. 그런데 하산까지 마쳐야 정상을 마친 것이라는 말이 있듯이 내려가는 일에 우리 모두 탈진 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처음에는 학선씨가 다리에 통증을 호소하며 자꾸 넘어지고, 또 한번 넘어지면 일어나려고 하질 않는다. 가이드들은 나빠지는 날씨에 잠이 들면 큰일이란 생각에 엄청 무서운 목소리로 일어나라고 소리치고 거칠게 다루었다.
야단을 친다고 될 일이 아니다, 몸이 내 맘대로 말을 듣지를 않는데 어쩔 것인가… 조금 있다가 내가 그런 경우를 당해보니까 알게 되었다. 조그만 돌부리에도 그냥 넘어진다. 넘어져도 그냥 넘어지는 게 아니라 다리가 꼬여서 넘어진다. 그냥 저절로 꼬여진다. 내 다리가 이렇게 흐물거리는 다리인지 정말 몰랐다. 일어나기는 또 얼마나 힘든지… 굴러서 내려가고 싶은 맘뿐이다. 겨우 겨우 가이드가 이끄는 대로 베를린까지 왔을 땐 시간이 밤 10시였다.
저녁 먹으라는 알림에 그 누구도 대답도 못하고 겨우 겨우 침낭 꺼내 깊은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이렇게 서밋(SUMMIT) 성공한 4사람의 18시간의 긴긴 하루가 끝났다.
일어나라는 가이드의 목소리, 온 삭신이 쑤셔 일어날 수가 없다.
어제의 우리 모두는 너무나도 지친 나머지 정상의 감격이라는 걸 느껴지질 않았다. 그런데 이 베이스캠프에 오니 회장님과 써니 언니가 커다란 축하를 해주니까 이제사 우리가 해낸 것이 실감이 난다.
이렇게 무사하게 꼭대기를 밟을 수 있었던 것은 우리 모두의 힘이 합하여져서 가능한 게 아니었던가!
산 속에서 함께 한 2주간 긴 시간 말고도 준비과정에서의 함께 한 모든 시간들이 우리 모두에게 보배 같은 시간들이었다. 너무나도 평범한 아줌마가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던, 생전 처음 들어보는 아콩카구아라는 고산에 정말 겁도 없이 도전을 했다. 무식이 용감이라고 했던가! 정말 그 무식하고 무모한 대한민국 아줌마의 깡으로 그 고산을 다녀왔다.
풀 한 포기 나지 않는, 너무나 고생스러운 그런 큰 산은 이젠 솔직히 두번 다시 가고 싶지는 않다. 하지만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한번은 경험 해 보길 적극 권하고 싶은 여행이었다.
나의 일생에서 정말 특별하고도 잊지 못할 경험을 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재미한인산악회 회원 여러분들께 진심으로 감사 말씀을 드린다.
끝으로 이 지면을 빌어 저희 산악회의 아콩카구아 원정에 많은 도움말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신 김기환 선배님과 그 외 산악인 선배 여러분께 심심한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재미한인산악회에서는 2008년 11월에 아프리카 최고봉인 킬리만자로로 원정을 떠난다.
합류하시기 원하는 산악인들께서는 우리 웹사이트(www.kaacla.com) 자유 게시판에 신청의 글을 올려 주시기 바란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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