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윤희 뉴욕시 교육청 학부모 조정관
내가 근무하는 뉴욕의 공립학교가 휴교하는 4월의 봄방학을 이용해 여행을 했다. 큰딸 사라가 6월10일이면 런던 세인트마틴 아트칼리지에서 베이직코스를 마치고 뉴욕으로 돌아오므로 아직 딸이 런던에 있을 때 같이 파리와 밀라노를 다녀오려는 계획을 했다. 딸은 패션의 중심인 밀라노를 보고 오는 것이 나중에 세계적인 디자이너가 됐을 경우 도움이 되리라는 미래에 이룰 성취감에 대한 무언의 기대감을 품고 있었고 나 또한 지금은 학교에서 일하지만 평생을 보석 디자이너로 지내면서 밀라노에 꼭 가보고 싶었다. 거의 몇 달간을 뉴욕과 런던 왕복과 유럽내 운항하는 저렴한 비행기 요금을 찾기 위해 인터넷을 쥐 잡듯이 검색했다.
런던에서는 딸 기숙사에서 한 침대에 자고 밀라노와 파리의 숙박은 배낭족같이 인터넷을 뒤져서 하룻밤에 20유로 하는 아침과 저녁을 한식으로 제공하는 한국인이 경영하는 민박들을 예약했다. 떠나기 전 파리와 밀라노에 대한 책을 사서 읽고 인터넷에서 지리상의 위치 확인과 사전 지식을 얻기 위해 틈만 나면 바쁜 중에도 공부하는 것이 무척 재미있었다.
처음 가 본 이태리 도시인 밀라노에 가려고 런던 남쪽에 위치한 딸의 기숙사에서 가까운 투팅 브로드웨이 역에서 4시간 전에 출발했지만 처음 가는 밀라노 여행에 마음이 들떠서 튜브라고 불리는 런던 지하철을 실수로 공항 반대편으로 한참을 타고 갔다.
뒤늦게 빅토리아 역에서 공항 가는 익스프레스기차를 탔지만 결국 생전 처음 비행기를 놓치고 말았다. 원래대로라면 밀라노 시내 가까운 리나떼 공항에 도착할 예정이었지만 비행기를 놓치는 바람에 밀라노 시내에서 먼 말페사 공항으로 향하는 비행기를 타게 됐고 벌금도 조금 물었다. 도착하니 비는 주룩주룩 내렸고 민박집으로 향했다.구수한 찌개에 밥을 먹자마자 골아 떨어져 다음날 일어나니 아름다운 밀라노가 내눈 앞에 펼쳐졌다. 밀라노에는 아직도 우리가 어렸을 때나 보던 전차들이 다녔고 길을 물어보니 아주 친절하게 가르쳐 줬다. 책에서 읽은 대로 우선 유럽 어디를 가나 첫인사만 잘 하면 그 다음은 쉬웠다.
본 조르노!, 익스쿠자! 이렇게 시작하면 만사형통이고 그 다음에는 자기들이 영어로 대화를 했다. 밀라노의 가장 유명한 건물인 피아짜 도우모 성당에 가려고 버스에 올라타고는 우선 본 조르노 하고 인사하고 얼마냐니까 그냥 들어가라고 해서 두오모 성당까지 타고 갔다. 내리면서 그라찌에, 미 아모레! 하고 내리니 버스 기사의 얼굴에 웃음이 함박꽃을 핀다.
두오모 광장에 오니 아코디언을 비롯한 7인조 밴드가 광장이 떠나라 신나는 연주를 해서 내 마음은 하늘로 붕 뜨는 듯 했다. 밀라노 시내를 골목골목 돌아다니다가 발이 너무 아파서 10유로에 오픈투어 버스를 타고 밀라노 시내를 영어 설명과 칸초네가 섞인 아주 듣기 좋은 목소리로 하는 설명을 이어폰을 끼고 자세하게 들었다.
런던으로 돌아와 딸은 학교로 돌아가고 다이애나 공주의 시아버지가 될 뻔 했던 모하메드 알 파예드가 소유한 세계 최고급 해롤드백화점에 갔다. 과연 물건들이 디스플레이도 잘 돼있고 특히 여자 화장실마다 관리원이 있어서 아주 깨끗하고 아름다웠다. 점심때도 됐고 해서 지하카페에서 샐러드와 차라도 한잔 마시려고 가니 입구에 Please wait to be seated.라고 써 있어서 잠시 두리번거리며 기다리니 오른쪽 구석의 카운터에 있던 사람이 입구 앞에 테이블에 앉으라고 손짓을 해서 앉았다.
조금 후 영국여성 두 명이 들어오니 아까 그 남자는 쏜살같이 입구로 와서 그들을 정중하게 안쪽 자리에 안내하고 그들에게 메뉴를 갖다 주었다. 곧바로 다른 여자팀이 들어오니 바쁘게 오가며 자리를 안내하고 메뉴를 갖다 주며 마담 땡큐를 연발한다. 그래서 그를 조용히 불렀다.
“당신 지금 카페 입구에 대문짝 만 하게 분명히 ‘자리 안내를 기다리시오!’하고 써있는데 내가 들어 왔을 때는 안쪽에서 나에게 손짓으로 앉으라고 했고 메뉴도 나에게 가져오지 않았으면서 저 영국 여성 들이 들어오니 마담!, 마담! 하면서 서브를 하니 당신은 내가 동양인이라서 그러느냐? 그리고 세계 최고 백화점이라는 런던 한복판의 해롤드에서 아시아의 경제 파워 신장으로 많은 아시안들이 여행할텐데 차별을 하는 거냐”고 묻고 펜을 꺼내 그 남자 가슴에 달린 이름을 적기 시작했다. 매니지먼트에 가서 불평신고 하겠다며.
그러자 이사람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매니저를 불러 올 테니 마담! 잠깐만 기다리시라고 아주 공손하기가 그지없었다. 조금 기다렸는데 아무도 안와서 그냥 나오려는데 수트를 말끔하게 차려입은 매니저라는 사람이 와서 그 사연을 설명 해주니 정말 너무 미안하게 됐다고 사과한다고 몇 번이나 거듭 얘기했다. 그래서 “왜 계속 미안하다고 반복하느냐? 내 주소를 적든지 해야 나중에 사과의 편지라도 보내지 않겠냐”고 하니 그보다는 지금 사과의 보상을 할 기회를 달란다. 이층에 있는 더 좋은 레스토랑에 가서 점심을 대접하고 싶다고 했다. 그래서 돌다리도 두드려 보는 심정으로, Is it free of charge? 하고 물으니 “물론입니다!” 한다. 그래서 푸드 섹션의 전체 매니저인 그의 공손한 안내로 점심을 먹게 됐고 이왕 대접 받는 김에 제일 비싼 26파운드짜리 맛있는 랍스터 샐러드와 차를 마시고 기쁜 마음으로 돌아왔다. 딸에게 얘기하니 믿을 수 없다며 놀란다.
딸에게 자기의 권리를 주장하지 않으면 피해를 당하지만 상황 판단을 잘해서 용기 있게 대응하면 어디를 가든지 당당하고 지혜롭게 살아 갈 수 있다고 말해 줄 수 있는 좋은 교훈의 기회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