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일장을 다녀와서 / 송일란
2008-05-16 (금) 12:00:00
교단일기 / 송일란(SV한국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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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토요일은 북가주한국학교협의회 주최로 백일장이 있었다. 참가한 학생들은 아버지, 우주인, 쓰레기, 컴퓨터 중에 하나를 제목으로 골라 자신의 경험과 사고력, 상상력 등을 총동원하여 글을 썼다. 뜨거운 뙤약볕에도 불구하고, 불편한 자세에도 불구하고 모든 학생들이 열심이었다. 초고를 쓰고 나서 교정을 본 뒤 옮겨 적는 꼼꼼한 학생도 있었다. 맞춤법이나 단어가 떠오르지 않아 같이 온 친구에게 물어보거나 적었다 지웠다를 반복하는 학생도 있었다. 감독으로서 백일장 안에 들어간 나는 가르쳐주고 싶어 입이 근질거렸지만 짙은 선글라스 안으로 마음을 숨긴 채 근엄한 표정으로 감독에 임했다.
아이들은 아버지라는 주제가 더 글거리가 많다고 생각했는지 제목을 아버지로 많이 택했다. 아이들의 글을 통해 드러난 아버지는 가정을 책임지느라 언제나 바쁘시고 시간이 없는 그런 모습이었다. 그러나 그런 중에서도 자식들과 놀아주려고 하는 우리를 사랑하는 아버지였다. 이 곳 지역의 특수성 때문인지 아버지와 떨어져 지내거나 잦은 출장으로 얼굴 보기가 힘들다는 학생들이 많았다. 한 학생은 자신의 아버지를 슈퍼스타라고 표현을 했다. 이런 일반인이 슈퍼스타를 코앞에서 볼 확률이 얼마나 되겠는가? 얼굴 보기 힘든 아버지를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자신은 결혼하면 아내와 자식들과 꼭 같이 살 거라고 마무리를 한 학생도 있었다.
점심 식사와 게임을 한 뒤 드디어 시상식 순서가 되었다. 학교별로 모여 앉아 눈을 반짝이며 자신의 이름이 호명되나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아이들을 보고 있자니 귀엽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저러다가 안 되면 얼마나 속상할까 싶어 그 자리에 서 있을 수가 없었다. 내가 가르치는 반의 아이들 중에서 혹시라도 많은 학생이 타고 한 두 명이 타지 못하는 사태가 벌어지면 어쩌나 걱정을 했는데 그렇게 마음 다치는 학생 없이 참가한 학생은 모두 상을 받아서 내가 상을 받은 것처럼 기분이 좋았다. 이렇게 똑똑한 녀석들이 내가 가르치는 아이들이라니 태극기 꽂아놓고 사진이라도 찍고 싶었다.
아침부터 시작한 행사는 5시가 다 되어서야 끝났다. 흙먼지와 햇빛에 지치기도 했지만 상을 받고 좋아하는 아이들과 다음번에는 더 잘해보겠다고 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이런 행사가 아이들에게 동기 유발과 자극제가 되는 것을 실감했다. 이 행사에 처음 참가해서 입상을 한 학생은 이곳에 이렇게 많은 한국학교와 단체가 있었는지 몰랐다며 다음번에는 으뜸상에 도전해 보겠다고 말했다. 그 학생의 말을 듣고 나니 행사를 후원하거나 도와준 한국 단체들을 학생들이 눈으로 보면서 한국 커뮤니티 안에서 한국인으로서의 정체성을 갖는 데에도 도움이 되겠구나 싶었다. 어찌됐든 하기 싫다고 뒤로 빠진 학생들도 있었지만 토요일 하루의 시간과 정성을 들여 도전한 학생들은 아름다운 열매가 있었다. 값진 열매를 위하여 많은 학생들이 도전할 수 있도록 내년에도 백일장 나가자고 꼬드기는 바람잡이 역할을 자청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