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김정옥(자영업)

2008-05-14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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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래를 개며

우리 둘의 속옷, 양말, 그리고 겉옷 몇 가지에 타월 몇 장. 특별한 일이나 행사가 있지 않고는 항상 건조기에서 꺼내는 우리 집 세탁물 품목들이 같다. “이제 얼마나 될 진 모르겠지만 허락하시는 남은 날들 위에 늘 함께 하시고 건강하게 살다가 그날에 ‘잘했다’ 칭찬들을 수 있는 삶을 살수 있도록 인도 해주세요.” 늘 하는 간구로 속옷을 개어 서랍에 가지런히 넣고 나면 말끔히 비어 버린 빨래 바구니만큼 내 마음도 홀가분해 진다.

딸 하나에 아들 하나, 식구라야 네 명밖에 안 되는 단촐한 살림이었지만 아이들을 키우던 그 시절엔 부지런히 산다고 살았어도 빨래가 자주 밀리곤 했었다. 그래서 아이들이 원하던 옷을 제때 입을 수 없게 만들어 미안한 얼굴의 엄마가 된 적도 몇 차례 있었다.

여름엔 덥다고 겨울엔 춥다고 하루에도 몇 벌씩 벗어 던지던 아이들의 빨랫감이 바구니에서 철철 넘치던 그 시절에는 빨래 방 마저 멀리 떨어져 있는 학생 아파트에서 살 때였다. 아이들이 학교에 간 사이에는 나가서 일하고 돌아오면 숙제 챙겨가며 밥상 차리랴 아이들 먹여서는 운전해 주랴.... 나의 하루 시간에서 아이들 레슨 끝나기를 기다리는 자투리 시간은 있었을 지언정 어쩌면 딱히 ‘제때제때 빨래 할 시간’만큼만은 모자랐던 시기였었다.


‘비오는 날은 공치는 날’이라고 했던가. 유학생으로 왔던 남편과 함께 틈틈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찾은 일이 페인트칠이었다. 이 말이 그 당시의 우리에게 딱 들어맞는 말이 된 셈이다. 남편과 아이들이 학교에 간 후, 혼자 커피를 마시며 오랜만에 한가하게 비오는 창 밖을 음미하고 있는데 갑자기 좁아 터진 욕조 옆에 이리저리 빨랫감을 토해내던 빨래 바구니가 생각났다. 모처럼의 여유를 내 던지고 우산을 찾아 들고나섰다. 아무도 없는 조용한 빨래 방에서 그야말로 현모양처라도 된 듯 깔끔하게 손질을 해 가며 옷가지들을 하나하나 살펴가며 개기 시작했다.

아이들의 속옷을 집어드는데 눈물이 핑 돌았다. 작고, 누르스름하고, 고무줄을 넣은 실밥마저 터져 있는... 3년 전 유학 길에 오를 때에 장만했던 내 아이들의 속옷이었다. ‘얘들아 미안해. 엄마가 잘못했어.’ 그 동안 아이들은 훌쩍 커 버렸는데 밥만 정신없이 지어 주었지 난 왜 아이들의 속옷 한 번을 바꿔주지도 삶아 입히지도 못했던가. 사과와 다짐의 기도를 하며 남아 있는 아이들의 옷을 정성껏 개었다.

그것이 시작이었다. 식구들의 속옷을 개며 내 마음의 간구를 같이 접어 넣어 주기 시작한 것이. 어머니의 기도는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하신 말씀대로 아이들은 잘 자라 각각 가정을 이루었다. 이젠 딸과 며느리에게 나의 빨래 접는 법을 말해 줄 때가 되었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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