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 창/우수정(한국학교 교사)

2008-05-02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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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아버지

글을 쓰게 만드는 사람이 있다. 어느 식으로든 마음 속 촉수 예민한 부분을 지속적으로 건드리는 사람, 내게도 그런 사람이 있었다.

나의 아버지…


지금도 그 이름만 부르면 내 속의 그 무언가가 출렁거린다. 이제는 넘치지 않을 정도로 많이 잔잔해진 그 속에는 한 가지로 설명되어지지 않는 많은 감정들이 용해되어 있다. 그것들은 적당히 알맞은 비율로 녹아 들어, 더 이상 내 안에 쓴 물을 뿜어 내지도, 가슴을 쥐어짜는 갈증을 유발하지도 않는다.

이제는 그 맛도, 출렁거림도 어지간히 즐길 수 있는 나이가 되었다. 아니, 어쩌면 나이 덕이 아닐 수도 있겠다. 세월이 흐른다고 모든 사람을 다 품을 수 있는 건 아니니까.

삶에 대한 진지한 사고를 시작하고부터 줄곧 아버지란 존재는 내게 풀길 없는 난제였다. 달랑 나의 삶 하나만으로도 물음표 투성이었던 그 시절, 아버지는 내게 얹어진 또 하나의 물음표였다. 도대체 이해라곤 할 수 없는 아버지와 그래도 함께 엉켜 돌아가야 하는 것이 가족이란 공동체의 운명이었고, 나는 진작 그런 삶에 멀미를 일으키고 있었다. 풀 수 없는 매듭을 잘라내 듯 무작정 집을 떠나고도 싶었다.

가능한 한 빨리 그 엉킨 고리를 풀고 나만이라도 자유하고 싶었던 게, 어린 시절 솔직하나 철 없던 나의 마음이었다. 그런 나의 마음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아버지도 그 고리를 풀고 싶으셨던 것일까?…

아버지는 치명적인 교통사고를 당하셨다. 사고로 성한 곳 한군데 없는 육신 중, 뇌를 가장 심하게 다치신 아버지의 기억은 종적을 감추었고, 그렇게 기억을 말끔히 비우신 아버지는 나를 아주 생뚱맞게 쳐다보시곤 했다.
Ground 0에서 다시 시작해 보라는 하나님의 배려였을까… 하지만 그건 내게 공평하지 않았다. 나의 기억은 그대로인데 아버지의 그것만 reset key가 눌러져 있었으니까. 그렇다면 나는 대체 누구와 화해를 해야만 했던 것일까…

또 한번의 풀길 없는 난제와 한바탕 씨름을 하면서, 나는 나의 아버지, 아니 약하디 약한 한 인간의 내면을 직시할 수 있었고, 줄곧 나를 향해 적의를 품은 것 같았던 삶이란 것과도 어지간히 화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아버지의 치료 도중 알 수 있었던 당신의 본심. 그 전엔 알 수 없었던 아버지의 본심, 바로 그 본심이 나를 화해의 길로 인도한 것이다. 아버지의 기억은 그러고도 6년 후에야 먼 길을 돌아 제 자리를 찾아 들었으니 꽤 오랜 여행을 한 셈이다.

요즘 아버지 다리가 편챦으시다. 어디 다리 뿐이겠는가. 가끔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냥 그 때 돌아가셨으면 어땠을까.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 나셨을지라도 어차피 또 죽을 육신이라면, 차라리 그 고생 안하고 그 때 돌아가신 것이 낫지 않았을까…. 불효 막심한 생각이다.

얼마 전 아버지가 굴비를 부치셨다며 전화를 하셨다. 나 어릴 적, 생선을 그렇게 좋아했던 걸 기억하시고 손수 그걸 사 부치셨단다. 그 비린내 나는 생선을 열어보며 이제는 알 것 같다. 그 때 돌아가시면 안 되었던 이유, 그건 관계를 회복하기 위함인 것을. 유한한 사람에게 영원히 남는 것은 대체 무엇일까. 사람과 사람이 사랑했던 관계 외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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