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피니언] 법이 무서워야

2008-04-15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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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이라는 것은 도덕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예의와 상식이 도덕의 기준
이고 법은 물이 흐르듯 순리대로 가는 것이다. 그런데 지금 세상은 법이 멋이 들었는지 선량한 백성을 지키고 보호하기보다 죄인을 보호해 주는 것에 더 무게를 두는 것 같다.
신문에 보도되는 아동 성폭행 사건을 보노라면, 법이 인권을 보호하는데 목적의 착오가 있는 것 같다. 피해자의 인권보다 가해자의 인권만 챙기고 있다. 사람을 죽인 살인자의 인권만 보호하면 억울하게 죽은 시민의 인권은 누가 찾아줘야 하는가? 인면수심, 천인공노할 죄인을 왜 잠바 모자 마스크를 씌워 주고 현장 검증을 하는가? 죽은 자의 인권은 없고 죽인자의 인권만 있는 것이 정의구현을 위한 법의 정신인지 헷갈린다. 안양에 성폭행 토막 살인범 정씨라는 놈이나, 일산 초등생 납치범이나 모두 사형에 처해야 한다. 이것이 당연한 ‘보상적 정의’라고 할 수 있다.
법의 할아버지라고 하는 기원전 18세기에 함무라비 법전 이론도 ‘이에는 이 눈에는 눈’으로 벌을 받아야 한다고 했다. 우리나라도 예전에는 손이 죄를 지으면 손을 잘라버리고, 입이 죄를 범했으면 혀를 빼버리고, 남녀가 불륜의 죄를 지으면 남자는 몸 가락을 자르고 여자는 코를 베어버리는 처벌을 했다. 성경에도 손이 죄를 범하면 손을 자르고, 눈이 죄를 지었으면 눈을 뽑아버리고 영혼을 구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하지 않았는가. 과실이 아닌 고의로 사람을 죽였으면 당연히 사형으로 법의 엄중함을 실천해야 한다. 이것이 당연한 인과응보다.
일산의 초등생 납치 범인도 상습범으로 10년간 교도소에서, 밥 먹여주고 재워주고 모시다가 석방하니, 또다시 그런 짓을 한 것이다. 국민이 낸 세금으로 이런 치한을 교도소 호텔에 모셨다가 재범자 만드는 것이 잘 하는 짓인지 잘못하는 짓인지 생각 좀 해봐야 할 것이다.
한국은 경제성장으로 의식주 생활수준은 너무 높아지고 사치해졌지만, 법과 도덕의 의식수준은 타락하고 있다. 지금 한국은 동방예의지국이 아니라 동방범죄지국으로 타락하고 있어 매우 부끄럽다.
살인자를 사형시키면 또 하나의 살인행위라고 하는, 이상주의 사형제도 반대론자들도 있다. 그러나 다시 살인을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석방한 전과자가 재범을 했다면 이것은 ‘미필적 고의에 의한 범죄방조’가 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정치범이 아닌 파렴치범의 무기징역은 국고 손실이다. 엄한 법이 집행돼야 안전하고 평화스러운 사회를 만들 수 있다.
싱가포르를 보자. 법이 엄하기로 유명한 싱가포르는 길에 휴지 하나만 버려도 벌을 받는다. 가벼운 교통법규만 어겨도 면허정지에 무거운 벌금이다. 공무원이 부정을 저지르면 그 집안은 3대가 공무원을 못 한다. 이렇게 엄한 법을 시행하니 도시 질서가 지켜지고 범죄 없는 도시로 각광을 받는 것이다.
한국은 1997년 이래 사형을 집행하지 않고 있다. 인권을 중시하는 나라로 인정받고 싶겠지만 형사정책 연구가들에 의하면 사형제도가 종신형제도 보다 재범예방에 효과적이라고 말하고 있다.
엄한 아버지가 효자를 만들고 엄한 어머니가 효녀를 길러낸다.(嚴父出孝子 嚴母出孝女)고 했다. 법이 무서워야 준법정신이 높아지고 나라의 영(令)이 선다.
윤학재/워싱턴 문인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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