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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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아콩카구아 등정기<2>

2008-04-1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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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 아콩카구아 등정기<2>

첫 등산이 시작된 ‘리오 오르코네스’ 지역.

아르헨티나 아콩카구아 등정기<2>

겨울이면 스키 리조트로 변하는 ‘페니텐테스.’

재미한인산악회 전미선씨

1월9일
맛난 저녁과 푹신한 침대에서 늘어지게 자고 난 상쾌한 아침이다. 하지만 저 거대한 가방들을 또 챙겨 차까지 실어야 하는 중노동 시간이다.
우리의 목적지는 ‘페니텐테스’(Penitentes)(2,700m)라는 곳으로 아콩카구아의 기슭이다. 버스로 4시간이나 가야 한다는 말에 넓은 땅이라는 걸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된다. 열심히 구경하다 보니 우리의 가이드 회사인 ‘Fernando Grajales Expedition’의 본부가 있는 페니텐테스에 도착을 했다. 이쁜 호텔들 사이에 조그마한 2층짜리 건물에 ‘Grajales’라는 간판이 보인다.
호텔의 각 방을 배당 받고 호텔 안에 있는 식당에서 저녁 시간을 가졌는데 그곳에 모인 여러 사람들이 다들 아콩카구아를 오르려는 산악인들이라 생각하니 외모는 동지를 만난 느낌이다.
생긴 건 노랑머리에 코쟁이들인데 영어 듣기가 그렇게 쉽지 않은, 정말 세계 각지에서 몰려든 국제적인 모임을 연상시키는 그런 식당의 풍경이다. 그 안에 내가 끼여 있다니 생각만해도 정말 뿌듯한 경험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그중에 동양여자들만 모여있는 테이블이 보이는 게 아닌가! 얼굴들이 말이 아니다. 햇빛으로 인한 화상이 생긴 것 같은 모습도 보이고, 안경자국과 울긋불긋한 피부 모습이 등반을 마친 팀인 것 같다. 누군가 말을 걸어 한국사람임이 파악이 된 후에 알고 보니 고미영씨라는 유명한 전문 여성 산악인이었고, 여성으로 이루어진 산악회팀이 원정을 온 것이었다.
산행이 어땠느냐는 우리의 질문에 9명이 베이스캠프에 도착했는데 3명이 시도도 못해보고 하산 명령을 받았다는 말에 우리 팀은 경악을 했다. 베이스캠프에 도착하자마자 의사한테 검사를 받아야 하는데 그때 결과가 나빠 3명이 탈락을 했다는 이야기에, 누구는 허파에 물이 차는 증상이 보여 헬기로 바로 하산을 했다는 이야기에 우리 팀은 완전 공포 분위기에 빠지고 말았다.

HSPACE=5

식사시간은 언제나 즐겁다.

10일
오늘부터 본격적인 등산 시작이다. ‘리오 오르코네스’(Rio Horcones)가 양쪽에서 합하는 지점이라 이름 붙여진 ‘콩프루엔시아’(Confluencia)(3,300m)는 우리가 처음으로 고소 적응하기 위해 3일 동안 묵을 장소이다. 원래는 강 쪽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몇 년 전 홍수가 난 후로 옮겨진 장소라고 한다.
산 입구에 도착해서 레인저 스테이션에서 인원 보고를 마치고 드디어 걷기 시작했다. 고생이 시작되는 지금, 막연히 흥분되고, 눈 앞에 펼쳐지는 산경치에 뿌듯하고, 들풀과 들꽃, 이 모든 게 새롭고 신기하고 놓치고 싶지 않은 맘에 눈 쫑긋, 귀 쫑긋이 된다.
이렇게 신기하게 시작했는데 가는 길이 장난이 아니다. 여기 정도는 시작에 불과 할텐데 그래도 힘들기는 여전하다. 그래도 가다보니 저 멀리 알록달록 텐트촌이 보이기 시작한다.
역시나 어딘가에 도착한다는 건 고향집에 온 듯한 그런 마음이다.
저녁은 스파게티가 나왔다. 지난해 여름의 페루 ‘잉카 트레일’(Inca Trail) 원정 때 너무나 한국 음식이 그리웠던 경험으로 이번에는 음식 하나씩을 해 오기로 했는데 정말 손들도 크시지, 한국 음식이 풍년이다. 가이드들이 우리 음식 냄새에 코를 잡거나 말거나 김치와 북어무침, 깻잎, 김 등을 꺼내니 와! 이런 게 바로 진수성찬이 아니고 뭐겠는가?
행복하게 끝낸 저녁식사 후, 고소적응을 위한 방법으로 물을 많이 마시라는 명령에 티와 주스가 엄청 제공이 된다. 마시고 싶어서 먹는 것과 명령으로 마시는 건 정말 천지차이다. 고문이 따로 없다고 생각이 될 때도 있었다.
또한 마셨다 하면 또 화장실 가는 건 당연지사 이것도 보통 귀찮은 일이 아니다. 오늘같이 춥고 바람이 억수로 부는 날은 더욱 그렇다.
그런데 나도 끓인 물만 먹은 것 같은데 이 배가 아파 오는 신호는 뭐란 말인가? 저 바람을 뚫고 어찌 화장실을 갈지, 침낭 겨우 데워놓았는데, 등등 배 아픈 건 둘째고 가기 싫다는 생각으로 버티고 있다. 하지만 자연의 섭리에 그 누가 버티겠는가…
모진 바람 헤치고 모든 일 무사히 해결한 후에 내 눈에 들어온 광경은 이런 자연에 왔을 때 받을 수 있는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밤하늘에 펼쳐지는 우주 쇼에 좀 전에 있던 투정은 사라지고 감동의 도가니에 빠지고 말았다.
LA에서의 여러 캠핑 때에도 밤하늘 장관은 만나는 일이지만 이곳 하늘에서 만나는 별들의 잔치가 더 요란한 느낌이다.
그렇다고 믿고 싶은 맘일 것이다. 배탈 난 것도 감사하며, 차가운 바람도 다 용서가 되는 정말 가슴 벅차게 한참을 바라보며 정말 저 우주에서 바라보면 이 지구 또한 점 하나에 불과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우주 크기에 비해 먼지만한 사이즈의 나란 사람이 이 큰 산에 오르겠다고 발버둥을 치고 있으니 열심히 사는 내 모습에 눈물을 흘릴 정도의 감동적인 일이 아닌가… 완전히 자화자찬에 자아도취에… 고소증세가 이렇게 나타나는가 보다.
으! 춥다, 얼른 들어가서 잠이나 주무시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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