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너무 많은 재료?

2008-03-2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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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음식이 좋은 음식일까? 단순한 음식일까 복잡한 음식일까? 수퍼마켓에서 비 건강식을 찾는 가장 쉬운 방법은 들어간 재료가 얼마나 길게 적혀 있나를 보면 된다고 한다. 짧을수록 좋고 길수록 나쁜 음식이라는 것이다.

요즘엔 단순하게 만든 음식이 유행이다. 고급 소스라 해도 생선 위에 뿌리면 생선이 아무리 고급이라도 그 참맛을 볼 수가 없다. 집에서 키운 귀한 야채도 소금만 살짝 쳐서 먹어야 제 맛이 난다. 요리에 재료가 너무 많이 들어가면 그 맛에 집중하기가 힘든 것이다.

정말 그럴까? 복잡한 재료를 쓰는 요리들을 보자. 타이식 카레에 들어가는 희한한 재료들의 길고 긴 리스트. 노스캐롤라이나의 만만치 않은 바비큐 재료 리스트. 그 음식들의 인기는 또 얼마나 대단한가?


문화는 어떤가? 순수한 문화가 좋은 것일까 아니면 여러 문화가 섞인 문화가 좋은 것일까? 우리 외국인들은 한국과 일본에 가면 자신들의 문화가 순수하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다. 한국 역사책들은 고유한 한민족이 몇 천 년 동안 그 피를 순수하게 지켜왔다는 인상들을 남긴다. ‘한국인’이란 단어는 미국 정치가들이 자주 쓰는 ‘미국인’이라는 단어와 너무나 다른 의미를 지닌다. 후자는 역사 혹은 인종이란 의미와 거리가 먼 공통으로 갖는 일체성을 의미한다.

내가 한국 다음으로 자주 가는 곳은 멕시코이다. 멕시코의 몇몇 가족들과 가깝게 지내고 있음을 행운으로 여겨 스페인어도 한국어만큼 갈고 닦는다. 한국과 멕시코의 문화는 그 차이가 너무나 극에 달한다. 수도의 크기로 봐서는 서울과 멕시코시티가 지구상에서 둘째와 셋째를 나란히 다툴 정도로 비슷하지만, 문화의 순수성에 대한 자세는 완전히 반대다. 멕시코 사람들은 자신들의 문화가 순수하지 않다는 사실에 대해 상당한 자만심을 갖고 기꺼이 받아들인다. 지성인이건 노동자이건 마찬가지다.

그동안 만난 많은 멕시코 사람들 모두 자신들의 피가 복잡하게 섞인 피라는 사실을 아주 자랑스럽게 여겼다. 스페인의 라틴사람들로 시작해서 중세기에 스페인으로 온 북 아프리카의 회교도들, 그리고 스페인사람들이 남미로 이주하여 ‘메시카’ 원주민, ‘마얀’ 인디언과 피를 섞은 사실을. 중미에서는 원주민의 ‘나후아틀’ 언어과 ‘에즈택’ 언어를 이름에 많이 쓰고 있다. 이 언어들을 연구하는 멕시코 인이 점점 늘고 있는데 복잡하게 섞인 역사로부터 각각의 문화를 분석하는 방법의 하나라 하겠다.

나는 약 2주 전 멕시코시티의 햇빛이 내려쬐는 한 고가의 앞마당에서 우리 대학교 학생들과 점심을 먹었다. 그 학교는 고아 혹은 부모로부터 버려졌거나 학대 받은 15세 이하의 아이들을 수용하는 YMCA가 운영하는 특수학교였다. 봄방학 봉사활동 차 멕시코에 간 우리는 그날 그곳 빌딩을 페인트칠했다. 학교 책임자가 우리에게 학교구경을 시켜주면서 그 아이들의 90%가 강간을 당했었다고 했다. 참으로 씁쓸했다.

점심은 물론 멕시코 음식이었다. 사순절 기간이라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로메리토스’라는 특별 요리였다. ‘에파조테’라는 먼지 맛이 나는 멕시칸 양념야채와 선인장으로 만든 걸쭉한 녹갈색 소스가 갈은 새우로 만든 건더기 위에 뿌려진 것이었다. 맛이 정말 희한했다. 많은 여행 중 그렇게 맛없는 외국음식은 처음이었다(그렇다. 암모니아 냄새가 진한 한국의 하얀 홍어회보다 더 먹기가 힘들었다!).
어떤 학생들은 한 입 이상 먹질 못했지만 난 외교 차원에서 억지로 다 위에 삼켜 넣었다. 내 옆에 앉은 요리사 중 한 사람에게 무슨 재료를 썼냐고 물으니, “이런저런 재료가 많이 들어갔지요. 멕시코처럼, 우리 멕시칸처럼!” 하고 답했다.

난 복잡하게 섞인 것들을 좋아한다. 영어도 그 중 하나다. 불란서 말이 삽입된 고대 앵글로 색슨 말의 여러 층이 아름답다. 한국어도 그렇다. 중국문자가 삽입된 한국 고유의 말의 여러 층이 멋지다. 복잡하게 사는 사람들, 섞인 이야기들, 감지가 안 되는 문화들이 좋다. 그렇긴 해도 사람이다 보니 특히 외국인이다 보니 어쩌다 한 번씩은 소화불량을 일으킨다. 너무 외국적이고 너무 달라서이다. 그 ‘로메리토스’를 먹고 나서 3일간 소화장애로 고생했음을 고백한다. 순수하고 단순한 것도 좋은 것임을 인정해야겠다.

한국과 미국
북켄터키 대학 전산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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