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트라케의 니케.
밀로의 비너스.
KAL 후원으로 작품설명에서 안내까지 한국어로 서비스
가이드 없이 걸작 감상
파리의 루브르 박물관에 가면 아무리 시간이 급해도 봐야 하는 세 가지 작품이 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 밀로의 ‘비너스’, 사모트라케의 ‘승리의 여신 니케’다. 하나를 더 봐야 한다면? 이때는 카라바조의 ‘성모의 죽음’이다. 이밖에 바빌론의 함무라비 법전, 미켈란젤로의 반항하는 노예, 베로네제의 가나의 혼인잔치, 제리코의 메두사의 뗏목, 다비드의 나폴레옹 1세 대관식 등 수많은 걸작들이 있다. 대부분의 관람객들은 뭘 보긴 봤는데 누구의 작품인지, 그것이 왜 유명한지에 대해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루브르를 나오게 된다.
지난 2월12일부터 루브르 박물관에 괄목할 만한 변화가 일어났다. 대한항공(KAL)의 후원으로 개인 휴대용 단말기(PDA)를 통해 작품해설을 한국어로 들을 수 있게 된 것이다. 해설뿐 아니라 단말기에 작품의 위치와 영상까지 나타나고 GPS에 의해 자신이 그 넓은 루브르의 어디에 서 있다는 것까지 알려준다. 사실 루브르에 들어가면 방향감각을 잃어 작품을 찾아다니는 것이 보통 피곤한 일이 아니다. 기자는 루브르에 3번이나 간 적이 있지만 그때마다 작품을 찾느라 헤맸는데 이번에는 단말기(사진) 덕분에 모든 문제가 한번에 해결돼 신기하게 느껴질 정도였다.
뿐만이 아니다. 작품 제작에 얽힌 비화를 루브르의 큐레이터가 직접 설명하는 것이 한국어로 통역되어 들려 나온다. 나폴레옹의 어머니는 조세핀이 미워 아들의 대관식에 참석하지 않았음에도 다비드가 그린 ‘나폴레옹 대관식’에는 왜 어머니가 참석한 것으로 그려져 있는가. 카라바조의 ‘성모의 죽음’은 왜 종교계에 충격을 주었는가(그는 창녀의 시체에서 힌트를 얻어 이 그림을 그렸다고 한다). ‘모나리자’의 모델이 되어준 라조콘다 부인은 어떻게 그 미소를 지을 수 있었는가. 밀로(작가가 아니라 발굴된 섬의 이름이다)의 ‘비너스’는 왜 양팔이 없는데도 헬레니즘의 대표작으로 꼽히는가 등등 600개의 주요 작품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주고 있다.
한국어 서비스 첫날인 지난 2월12일 루브르의 관계자가 PDA 시스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가운데가 대한항공 조양호 회장, 왼쪽이 조일환 주불대사, 오른쪽 끝이 에어버스의 존 리히 사장. (사진 대한항공 제공)
루브르는 콧대 세기로 이름 높은 박물관이다. 러시아와 중국이 강국이지만 루브르에 러시아어, 중국어 작품 설명은 없다. 불어, 영어, 독어, 스페인어, 이탈리아어, 일본어가 있을 뿐이다. 여기에 한국어 서비스가 7번째로 추가된 것이다. 이같은 파격적 결정이 내려진 것은 루브르가 소리만 들리는 오래된 단말기를 영상까지 뜨는 최신형 멀티미디어로 바꾸어야 할 단계에 이르렀으나 엄청난 예산으로 머뭇거리고 있는 것을 대한항공의 조양호 회장이 알고 “KAL이 후원할 테니 대신 한국어 서비스를 넣어 달라”고 교섭해 이루어진 것이다. 원래 대한항공과 프랑스는 관계가 돈독해 창업주 조중훈 회장과 현 조양호 회장이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종도뇌르-코망되르 훈장을 받았을 정도다.
루브르의 정문 피라미드 앞에서 쉬고 있는 관람객들. 한국인은 연간 8만명이 찾아온다.
루브르를 구경하는 외국인 관광객들의 모든 단말기에 KAL 로고와 KAL에 감사한다는 말이 뜬다. 사실 루브르 관계자의 말처럼 루브르 관람객(연간 820만명)의 대부분은 평생 처음 미술관을 방문하는 사람들이라고 한다. 더구나 미술은 알아야 감상할 수 있는 예술분야다. 가이드 없이 단말기만 갖고(사용료 6유로) 루브르의 세계 최고 걸작들을 숨은 이야기까지 들어가며 한국어로 감상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흐뭇한 일이다. “대기업이 돈 벌어서 어디다 써야 하나”를 이번에 KAL이 한번 보여준 셈이다. 돈 버는 것은 기술이고 쓰는 것은 예술이다 라는 말이 실감난다.
모나리자 앞은 항상 붐빈다.
이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