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피니언]김웅수 회고록-제2인생을 걷게한 5.16(18)

2008-03-19 (수)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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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웅수 예비역 소장, 경제학 박사

집행유예 출소

내가 언도를 받았을 때는 이미 봄이 가까웠을 때였다. 감방생활 가운데도 종종 외부 소식이 들려왔다.
어느 날 아침 세면장에서 부정축재 혐의로 구속된 전 공병감 엄홍섭 소장과 부닥치게 되었다. 그는 오랫동안 공병감으로 재직해 기회를 독점한다는 비난은 받았으나 열심이고 우직하며 정직한 사람이었다. 그는 외부에서 나에 관한 이야기가 많으며 곧 출소하게 될 것이라고 전해주었다. 그 이야기를 듣고 얼마 되지 않아 나는 출소를 위해 호출되었다.
감방에서 출소를 위해 나오는데 이상국 장군이 세면을 위해 나와 있음을 보았다. 그는 내가 출소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며 축하한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장도영 장군도 같이 출소한다고 들었다. 이상국 장군은 30사단 반혁명 사건으로 기소됐지만 그의 상관인 서종철 관구 사령관은 난을 면했으며 정강 장군과 같이 억울한 처지에 있었다. 나의 부하였던 정강 장군이나 장도영 장군의 부하들의 석방은 듣지 못하였다. 나는 이 장군을 면대하기 미안한 감을 금하지 못해 혼자 출소하게 되어 미안하다는 말만 남기고 그를 뒤로했다.
나는 장도영 장군과 같이 혁검에 보내졌다. 장도영 장군은 나와는 달리 혁명 주체의 최고의장을 수락했었으나 주체세력에서 쫓겨나 부하들과 반혁명죄로 무기를 언도 받고 있는 처지였다. 우리는 5.16 한 돌을 기념키 위해 반혁명죄는 인정되나 군 복무중의 공을 인정해서 형의 집행유예로 석방된다고 들었다. 5.16 1주년 2, 3일 전으로 기억되다. 김희양 부관이 집사람과 같이 마중 나와 주었다. 부하를 옥중에 남겨둔 채 석방됨이 석연치 않아 기쁨을 느낄 수는 없었다. 책임 있는 상관이 부하에 앞서 풀린다는 것은 군의 특성상 나로서는 예사로 넘길 수는 없는 일이었다.
나는 형무소에서 풀려나서도 완전한 자유인이 되지는 못했다. 감시원으로 추측되는 경비원 2명이 집 아래위를 배회하였다. 때때로 전화가 걸려왔다. 나의 과거 부하라고 하였다. 나의 목소리를 확인하면 인사말도 없이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결혼식이나 밖 나들이를 할 때는 의심스러운 사람이 내가 눈치 차릴 정도의 거리에서 따라다녔다. 어느 면에서는 나의 보호가 되겠지만 보호가 필요 없는 나에게는 기분 좋은 일은 아니었다. 내가 마당에 있는 장미가 아름답구나 느낀 것도 이 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나는 일벌레가 되어 인생을 즐거움에서 멀리 떨어져서 살고 있었음을 발견하였다. 나는 바뿐 군대 일정에서도 일요일이면 가급적 아이들과 같이하는 시간을 내려했으나 여의치 아니하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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