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목련 사랑

2008-03-08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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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은 가슴 없는 모든 것을 다시 목숨으로 피어 내고 아직은 목련 가지 끝에 몸을 숨긴 봄은 은밀하고 조심스럽기만 하다. 아내는 장미꽃을 좋아한다. 그러다가도 3월이 오면 짧은 며칠 동안을 히디힌 불덩이로 피어나는 목련 꽃을 그리면서 장미를 잠시 잊고 있는 것 같다. 아내와 나는 고향집 장독대에 자리했던 백목련을 찾아 헤맸지만 찾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자목련을 택했다. 마침내 우리 집 정원 언덕에 겨우 눈을 비비며 봉우리를 터뜨리는 목련 두 그루를 심고 나서야 아내의 눈빛이 유별스럽게 행복해 보였다.
목련은 이곳 미국인들도 좋아하는 친숙한 꽃이다. 특히 미시시피 주에서는 목련을 주화로 정하였다. 목련은 단아한 모습이 고결하다. 처음 꽃송이를 피울 때의 상서러움, 활짝 핀 눈부심과 꽃잎을 떨굴 때의 잔혹한 이별을 보면서 목련이 지닌 다채로운 빛깔만큼 인간의 운명도 무지개처럼 느끼게 한다.
목련은 언제나 격정을 추스르지 못하는 정한의 꽃이었다. 맨가지로 나무 가지 끝에서 그 큰 꽃봉오리를 피워낸다. 그러나 며칠간의 격정의 사랑으로 미련 없이 스러진다. 덧없는 인생의 환희처럼 허무 하지만 그러나 슬퍼하지 않는다. 다시 진 자리에 봄이 오고 아우성치며 밀려오는 생명의 잉태를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으로 살아가면서 모두가 그러하지만 여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바로 도를 닦는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한 생명을 만삭이 되기까지 품었다가 애틋한 사랑으로 감싸 기르는 과정은 수도자와 다름 아니다. 목련을 보면서 불현듯 스치는 “사랑에 대한 눈물겨움”은 어머니의 삶과 무관하지 않다.
목련은 슬픈 여인의 일생이었다. 귀밑머리에 하얀 솜털이 고왔던 어머니는 어린 나를 데리고 언덕을 올랐다. 겨울을 견뎌낸 3월에 들녘은 잉태를 서두르며 마른 기침을 토해내고 있었다. 아직 서늘한 바람에 근원을 알 수 없는 어떤 슬픔이 밀려오고 안개처럼 다가오는 봄은 분명 환희 이지만 그 기쁨 뒤에는 알 수 없는 비애의 서글픔을 감추고 있었다.
어머니가 들녘으로 나간 것이 단순한 봄나들이가 아니었음을 알게 된 것은 오랜 세월이 흐른 뒤였다. 하루가 멀다시피 술에 취해 건성으로 살아가시는 아버지를 보면서 밤톨같이 여물어 가는 자식들 걱정에 속울음 삼키며 나물을 캤을 것이다. 내손을 잡고 집으로 돌아오는 언덕 백이에 흰 상여처럼 피어난 목련 꽃을 보면서 속절없이 밀려오는 슬픔을 달랬을 것이다.
목련은 이른 봄에 피어나는 어머니였다. 유백색으로 피어나는 목련은 시오리 새벽 눈길을 달려가 자식들을 위해 기도하는 어머니의 모습이다. 봉우리만 여문채 눈보라 속에서 겨울을 견뎌내는 고아함, 잔설에 맺힌 고드름 같은 자식들을 품에 안고 눈물도 겨웠을 것이다. 봄을 맞는 목련은 오소소 살점이 돋아 아직도 춥다. 온몸으로 부여안으며 불씨를 지피고 있다.
잎새가 돋아 오르기 전 홀로 봄이 왔음을 알리는 목련은 반가운 전령이다. 개화 시기가 짧은 목련은 금방 서둘러 떠나간다. 어쩌면 그렇게 아쉬워야 할 만큼 사랑할 수 있는 시간이 너무 짧기에 더 귀하고 아름다운 것인지.

안주옥/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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