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피니언] 검은 머리 외국인

2008-03-07 (금)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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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인수 메릴랜드 보현사

얼마 전 온 국민의 관심을 집중시킨 이명박 특검회장에서 특별검사는 사건에 연루된 재미교포 김경준 씨를 ‘검은 머리 외국인’이라고 지칭한 것은 은유적이면서도 함축 있고 뼈있는 표현이었다. 왜 평범한 재미동포라고 하질 않고 하필이면 검은 머리 외국인이라고 했을까? 이는 미국 국적을 지닌 한국인으로서 자신의 이익에 따라 양다리를 걸칠 수 있는 기회주의자, 또는 애국심도 없는 배신자의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더구나 재미동포를 천박하게 ‘똥포’로 불린 것도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닌 상태에서 책임 있는 법조인마저 비아냥거리는 표현은 충격적이다.
왜 이렇게까지 재미동포의 이미지가 추락한 것인가. 결과에는 반드시 그 원인이 있듯이 그동안 재미동포들이 한국과의 관계나 거래에서 남겨진 나쁜 인상이 쌓이고 쌓인 결과라고 본다. 큰 원(願)을 세워 이민을 결심하고 국적까지 바꾸었으면 철저히 미국화되어 주류사회에 뿌리내려야 함에도 불구하고 호시탐탐 한국과 연결하여 욕심을 채우고 상처와 피해를 주는 소수의 재미동포 때문에 다수의 성실한 재미동포까지 먹칠하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미주 이민의 동기를 살펴보면 더 좋은 환경과 삶을 이루기 위해 건너온 순수이민형과 부정부패, 사기, 부도, 절도 등 죄를 짓고 도피를 목적으로 건너온 도피형으로 분류할 수 있는데 후자의 도피형들은 반성과 참회로 새출발을 하지만 이미 간직하고 있는 나쁜 씨앗은 때가 되어 적당한 조건과 환경을 만나면 싹이 자라 또다시 악의 꽃을 피우게 된다.
더구나 한국형 고질병인 허례허식, 빨리빨리, 법 경시, 불신을 하루빨리 버리지 못하고, 크고 작은 실패는 물론 악을 피우는 동기가 되므로 한 생각, 한 행동, 말 한마디에 신중하고 조심하여 악의 불씨를 살피고 제거해야 한다.
인기 있던 연예인들이 무대를 떠난 후 과거의 인기에 연연하여 다시 무대에 올라가면 과거의 명성까지 퇴색하기 일쑤이듯이 무대에서 내려왔으면 뒤도 보지 말고 선택한 새로운 길로 혼신의 힘을 다하여 노력해야 한다. 혹시나 하고 뒤로 가서 기웃기웃 해봐야 득보다 실이 많다는 걸 명심해야 한다.
지금 한국은 빨리빨리 변하고, 과정보다 결과를 우선시하기 때문에 검은 머리 외국인이 적응하기엔 터프한 외국과 같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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