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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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거 자원 봉사 유감

2008-02-23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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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달 초 수퍼 화요일에 실시된 캘리포니아 예비선거에 자원 봉사자로 참여했었다. 우리 봉사자들은 투표하기 한 시간 전인 6시에 미리 나와 무려 15시간을 제한된 공간에서 함께 일했다.
투표는 그리 붐비지 않아서 우리는 한가롭다거나 약간 지루하다는 느낌마저 갖고 띄엄띄엄 투표하러 온 유권자들의 면모를 지켜보았다. 어떤 부부는 지지하는 정당이 다른지 서로 다른 투표용지를 받아 투표하는가 하면 어린아이 손을 잡고 온 부모들도 몇 있었다. 그들은 자녀들에게 투표과정을 자세히 설명해 주기도 했다. 마침 투표소가 유치원이 딸린 초등학교라서 유치원교사가 어린 학생들을 이끌고 견학을 오기도 했다. 이들은 한가한 시간에 맞춰 스무 명씩 그룹을 지어 교사의 인도로 투표장에 들어와 진지한 표정으로 교사의 설명을 듣고 실제로 고사리 손으로 모의투표도 해 보았다.
이렇게 해서 네 그룹 80여명이나 견학을 했다. 투표가 끝나는 저녁 8시까지 투표소를 다녀간 유권자는 등록 유권자 9,997명중 320명 정도였으니 투표율은 저조한 편이였다. 그런데 그게 문제가 아니었다. 내가 맞이해야 할 한국인 유권자는 겨우 5명이었다. 그것도 예년에 비해 늘어난 숫자라 한다. 라크레센타가 한인이 많이 사는 지역임을 감안할 때 좀 실망스럽다.
나는 이전에도 이런 선거 자원봉사를 했었는데 그때나 지금이나 우리 교민들의 투표 참여율은 내가 사는 지역에 관한한 제로에 가깝다. 이번 선거에서 최대 대의원을 가진 캘리포니아에서 민주당 힐러리 예비 후보는 아시아계 유권자의 75%의 지지를 받아 오바마를 꺾었다는데 이 아시아계의 몇%나 우리 한인이 기여했는지 의심스럽다. 나는 백인 노인 봉사자들이 내게 왜 한국인은 안 보이냐고 물어 볼까봐 겁이 났다.
기표소 가운데 시각 장애인을 위한 것은 오디오 등 특수 기자재 때문에 한 세트에 3만 달러가 넘는다고 한다. 그런데 오디오 투표를 한 사람은 한명도 없었다. 또 몇 명이 올지도 모르는 한인 유권자를 위해 나 같은 한국말 사용자까지 배치하는 배려를 했다.
나는 이렇게 인풋과 아웃풋이 현저하게 불균형인 투표소 현장을 보며 의아심을 가졌다. 왜 효율성을 높이고 비용을 절감할 대책 없이 이대로 계속해 나가는지 말이다. 그런데 나는 이런 생각이 나의 짧은 소견이란 걸 알았다. 이것이 바로 미국을 움직이는 힘, 즉 시스템의 힘이란 생각을 하게 됐다. 미국은 시스템이 지배하고 시스템이 움직이는 나라라고 하지 않는가. 그런 제도는 어느 한사람, 특정 이익집단이나 정파가 만든 것이 아니고 온 국민의 합의 아래 만들어 진 것이다. 그래서 너 나 없이 신뢰한다.
조국을 보면 선거가 있고 정권이 바뀌고 할 때마다 뭐가 그리 많이 바뀌는지 모르겠다. 그래서 멀리서 보기에도 불안하다. 나는 미국 사람은 못 믿을지언정 그들이 만들어 놓은 쉽게 흔들리지 않는 시스템을 믿는다. 다음 선거 때 한국 사람들 투표 잘 안한다고 나 같은 한국말 하는 봉사자를 제외시키진 않으리라.

배광자 글렌데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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