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작가의 행복

2008-02-16 (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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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창시절부터 남편은 카메라에 관심이 깊어 바쁜 생활 중에도 시간만 나면 사진을 찍으러 나가고 관련 서적을 열심히 사서 읽곤 했다. 그러면서 “우리 은퇴하고 나면 같이 캘리포니아를 아름답게 카메라에 담아보자”고 이야기 하곤 했다. 남편은 캘리포니아를 아주 좋아한다.
세월이 흘러 우리는 자연스럽게 사진 찍으러 다니는 사진쟁이 부부가 되었다. 그런데 사진을 찍으면 찍을수록 점점 어렵다는 생각이 든다. 디지털 시대가 열리면서 요즘은 누구나 카메라를 핸드폰 정도로 부담 없이 가지고 다니며 사진을 찍는다. 사진 찍는 법도 워낙 간단하여 어떤 때는 전문지식을 가진 우리보다 자동으로 찍은 사진이 더 실수 없이 잘 나오기도 한다.
그러다보니 힘들어지는 것은 사진작가들이다. 사진작가들은 요즈음 몸과 마음이 모두 바쁘다. 좀 더 개성 있고 경이로운 사진, 뭔가 비밀을 간직한 듯한 색감을 추구하려다 보니 연구도 많이 해야 하고 하루가 멀다 하고 이곳저곳으로 소재를 찾아 쫓아다닌다.
요즘 사람들은 기존의 틀에 박힌 예쁜 사진을 원하지는 않는다. 그런 사진들은 관광안내 책자에도 얼마든지 있으니까 말이다. 미인대회에서 양귀비 같은 미인보다 지적이고 개성이 뚜렷하며 재치 있는 미인들이 평가를 받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사람들의 눈은 시시각각 변하여 가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작가들은 끈임 없이 노력하며 경험을 쌓아야만 비로소 자기만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기에 때로는 위험을 감수하면서까지 열심히 뛰는 것이다.
언젠가 어느 사진작가와 점심식사를 하려고 만났을 때였다. “오랜만이다”하고 반갑게 악수를 하며 보니 그의 얼굴이 일그러져 보였다. 앞니가 부러진 것이었다. 사연인즉 다운타운 어느 고속도로 옆에서 혼자 열심히 야경촬영을 하고 있는데 뒤쪽이 조금 이상하게 느껴져 돌아보려는 순간 웬 청년 둘이 카메라를 빼앗으려고 했단다. 그는 반사적으로 카메라를 껴안고 투쟁을 벌이며 빌었단다. “카메라는 가져가도 좋으니 그 안에 들어있는 메모리칩만은 주고 가라”고.
그러나 그들은 그 말을 못 알아듣고 옆에 있던 삼각대로 내려치는 바람에 그는 그 자리에 쓰러졌다. 그 순간 어디에선가 “사람 살리라”는 외침이 들렸고 청년들은 놀라 카메라를 내동댕이친 채 도망을 갔다. 그가 정신을 차려 집에 돌아와 보니 앞니는 부러지고 온몸은 피투성이가 되어 있더란다.
나는 놀라서 “어떻게 그런 와중에 싸울 용기가 있었느냐?”고 물으니 그는 “그때는 오로지 사진을 잃으면 안 된다”는 일념뿐이었다고 했다. “작품도 좋지만 사람이 살고 봐야지…” 하며 타이르는 나에게 그 작가가 하는 말.
“그렇지만 나는 그때만큼 좋은 작품을 얻은 적이 없어요”
앞니 빠진 얼굴에 가슴 벅찬 희열을 어쩌지 못하면서 그는 행복한 미소로 나에게 답하여 주었다. 그 해맑은 얼굴을 보며 작가의 행복이란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에바 오/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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