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4개월, 3주 & 2일’

2008-02-01 (금)
크게 작게
‘4개월, 3주 & 2일’

오틸라와 가비타(오른쪽부터)와 다른친구가 기숙사 방에서 화장을 하고 있다.

‘4개월, 3주 & 2일’

수술하는 호텔방에 든 오틸라(왼쪽)와 친구 가비타.

암울한 시대에 꽃피운 인간애

여대생의 불법 임신중절 통해 본
차우셰스쿠 루마니아 사회상 고발
작년 칸 영화제 대상 수상한 수작

여대생의 불법 임신중절이라는 주제를 통해 독재자 차우셰스쿠가 지배하는 루마니아의 척박한 생활조건을 고발하고 또 생존을 위해 개인이 치러야 하는 희생과 타협을 솔직하고 사실적으로 그린 사회비평 영화이자 인간 드라마이다.
지난해 칸영화제 대상 수상작으로 비평가들의 극찬을 받은 이 영화는 얼마 전 발표된 오스카 외국어 영화상 후보작 5개 안에 들지 못해 비평가들이 오스카 회원들의 분별력 모자라는 예술 식견을 맹렬히 비난하는 사태를 빚기도 했다.
군더더기나 꾸밈없이 기록영화 식으로 24시간 안에 일어나는 임신한 여대생과 그녀의 수술을 돕는 친구를 통해 루마니아의 가난과 비리 그리고 강인한 생존 결의와 따뜻한 인간애를 강렬하게 표현한 영화다. 내용이나 촬영이 모두 어둡고 음울하지만 감독은 자신의 인물들을 비판한다기보다 인간적 안목으로 다뤄 암담함 속에 일말의 희망의 여운을 남겨 놓는다.
1987년 부쿠레슈티의 대학생 기숙사. 임신한 가비타(라우라 바실리우)가 죽을상을 한 채 가방에 옷가지 등을 담는다. 가비타는 철없는 소녀 스타일인 반면 그녀의 룸메이트인 오틸라(아나 마리아 마린카)는 생활력 강한 활동파. 오틸라는 가비타의 임신중절 수술을 위해 현찰을 마련하고 불법 낙태시술자를 찾아내고 또 수술할 호텔 예약까지 혼자서 다 해낸다. 기숙사 내서 오틸라가 동료 남학생이 운영하는 암시장에서 담배와 비누 등을 사는 장면을 통해 루마니아의 형편없는 경제 상황을 단편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가비타와 오틸라가 호텔 방에 짐을 푼 뒤 무표정한 얼굴에서 냉기가 도는 형 집행자 스타일의 낙태시술자 베베(블라드 이바노프-냉혈적 연기로 LA 영화비평가협회에 의한 2007년도 최우수 조연 남우로 뽑혔는데 실제로 만나보니 부드러운 인상이었다)가 들어온다. 가비타는 침대에서 공포에 질린 채 울상을 하고 누워 있고 베베와의 협상은 오틸라가 한다.
수술비를 깎으려는 오틸라를 보고 베베가 가차 없이 질책을 한 뒤 오틸라는 자기 몸으로 모자라는 돈을 채운다(모든 것이 지극히 사무적이어서 더욱 소름이 끼친다). 가비타가 수술 후 쉬는 동안 오틸라는 태아를 버릴 곳을 찾아 밤거리를 헤매는데 여기서 스릴러 분위기마저 띤다.
루마니아의 현실을 사실적으로 그린 내용이어서 더 강한 충격을 받게 되는데 연출력이 탄탄한 근검절약형 영화다. 끊임없이 관찰하는 스타일의 카메라가 좋다. 이 영화의 실제 주인공은 가비타가 아니라 오틸라다. 오틸라의 얘기라고 할 수 있는데 마린카가 나무랄 데 없이 확신에 찬 연기를 한다.
크리스찬 문지우 감독. 성인용. 일부지역 IFC.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