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야생 버섯

2007-12-27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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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자식들이 당신한테 거짓말하기를 바라오?”
15년 전쯤 아내와 함께 한국문화와 미국 문화의 차이에 대해 심각하게 얘기를 나누던 중 내가 아내에게 물었다. 누가 그 질문에 “그렇다”라고 답을 할 것인가? “한국인들이라면! 글쎄?” 열 올리며 토론하던 그 당시에는 그런 생각이 들었었다.
그 질문은 당시 아직 젊은 부모였던 우리를 자식의 입장에 놓고 했던 질문이었다. 부모에게 어떻게 존경심을 보여야 하는가.
우리는 유교사회가 서양사회보다 부모에 대한 존경을 더욱 강조한다고 들어왔다. 심지어 누가복음의 예수는 부모를 미워하라고까지 말하고 있다(물론 많은 사람이 14장26절의 이 ‘hate’란 단어를 정말 ‘밉다’라는 의미라고 보지는 않지만, 하필이면 그 단어가 쓰여졌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한 일이다).
부모 자식 간의 밀접한 관계가 갖는 신성함은 인간 모두에게 거의 공통적인 것으로, 다만 문화에 따라 다르게 보여질 뿐이다. 하지만 그 신성함 간의 차이는 문화에 따라 상당히 다를 수가 있다.
결혼 초, 아내는 내가 자주 어머니와 언쟁을 벌이는 것을 보며 상당히 기막혀 했다. 처음엔 그것을 싸움이라고 생각하며 어머니에게 말대꾸하는 내 옆에 앉아 있는 것을 못 견뎌했다. 하지만 점차 그 언쟁이 따스함과 존경심 속에 벌어지는 것을 느낄 수 있게 되었다. 그렇긴 해도 마음 불편하기는 마찬가지라며 내게 투덜거리곤 했다.
나는 부모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을 때 그 사실을 솔직하게 말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부모를 무시하는 행동이라 반박하며 얘기 하나를 지어냈다. 그 얘기는 우리가 되풀이해서 얘기하고 글로 쓰기도 하는 동안 다음과 같이 정리가 되었다.
한 노인이 깊은 산 속의 작은 집에 혼자 살고 있었다. 그는 평생을 그곳에 살면서 숲에서 아주 비싸고 귀한 야생 버섯을 찾는 일을 했다(나는 사람들이 숲에 ‘버섯 사냥’을 자주 가는 미시간에서 자랐다).
그 버섯 사냥엔 아주 복잡하고 전문적인 기술이 필요한데, 그 버섯이 독버섯과 아주 비슷해서 오랜 세월의 충분한 경험이 없으면 위험한 실수를 저지르기가 십상이었기 때문이다. 노인은 이 특별한 기술을 두 아들에게 전수했지만 그들은 도시로 떠나고 말았다.
어느 날 큰 아들이 방문을 했다. 노인은 숲에 나가 저녁상에 놓을 버섯을 따가지고 왔다. 바구니를 살펴 본 아들은 그 버섯들 중에서 독버섯 하나를 발견하고 깜짝 놀랐다. 한 번의 실수도 없었던 노인이 70 후반이 되면서 큰 실수를 한 것이었다.
아들은 노인이 낮잠을 자는 사이에 원래의 야생 버섯 하나를 따가지고 와 독버섯과 바꾸어 놓았다. 물론 그들은 맛있는 저녁식사를 했다. 이 아들은 늙어가는 아버지를 쓸데없이 괴롭히거나 실망시키는 대신 그렇게 처리하는 것이 자식으로서 아버지를 존경하는 일이라 굳게 믿었다.
한 달 후 둘째 아들이 방문을 했다. 노인은 또 숲에 가서 버섯을 따왔다. 그런데 둘째 아들 역시 바구니에서 독버섯 하나를 발견했다. 그 아들은 독버섯을 꺼내면서 아버지의 어깨에 손을 얹고 말했다.
“이것 보세요, 아버지. 독버섯 하나가 끼었네요. 이건 버리고 제가 나가서 버섯을 더 따올게요” 이 아들은. 아버지에 대한 최대의 존경심 속에 그렇게 말했다. 남의 도움 없이 살 수 없는 어쩔 수 없는 늙은이 취급을 하며 적당히 얼버무리는 대신, 진실을 솔직하게 밝힐 만큼 아버지를 존경한다고 믿었던 것 이다.
자, 이제 이 질문에 답을 해보자. 당신이 그 할아버지라면 자식이 어떤 아들처럼 행동하기를 바라겠는가? 과연 한국인들의 답은 미국인들의 답과 다를까?

한국과 미국
북켄터키 대학 전산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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