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결혼 1년 후에 태어난 첫아이가 올해에 40세가 되었다. “네가 벌써.....?” 어머니가 내게 하시던 말씀을 나도 해본다. 그때에 어머니가 보여주시던 표정처럼 나의 감정도 조금 복잡해진다.
해가 바뀔 때마다 모든 사람들의 나이가 하나씩 늘어나는 것이 하나도 이상한 일이 아니기는 해도, 40세가 되는 나의 아이를 바라보는 일은 예사롭지가 않았다.
갓난아이가 자라서 40이라는 나이가 되는 세월은 길기도 하였거니와, 그것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결혼과 함께 나의 새로운 운명이 시작되었을 뿐만 아니라 그때에 나와 맺어진 사람들의 운명도 나와 함께 하였던 것이기 때문이다.
결혼을 하겠다고 24년을 애지중지 키워주신 부모님의 곁을 미련도 없이 떠나갔으며, 새로 맺어지는 시집식구들과의 삶이 또한 나의 삶이라는 의미는 별로 중요한 사안도 아니었다.
그리고 태어나는 아이들이 나의 삶을 송두리째 관장하게 된다는 사실. 그때에 풋내기엄마가 바라보는 세상은 만만하기만 하였다. 그리고 세월은 흐르고 흘러 오늘에 와 있다.
내 인생의 전환점, 41년 전에 전개되었던 나의 미래는 이제 과거가 되었으며, 나의 첫아이가 40세가 되는 날, 나는 내 삶의 여정 위에 ‘방점’ 하나를 찍었다. 지금 찍어놓은 ‘방점’을 사이에 두고 나의 과거와 미래가 확연히 갈려있다.
이제부터 매일 찾아오는 나의 미래와 내가 또다시 보내는 올해의 마지막 달을 위해서 축배의 잔을 든다. 바라보이는 서쪽하늘에 낙조가 드리워있다. 저녁노을이 아름다운 것은 그것을 바라보는 시선에 애정이 담겨져 있기 때문일 것이다. 가족이라는 단위 앞에서 아무것도 그 사이에 끼어 들 수가 없을 것처럼 세월은 언제나 바쁘기만 하였으며, 그 무형의 세월 속으로 스며든 우리들만의 흔적이 여기저기에 남아서 눈에 보인다.
우리의 첫아이. 내가 부모를 거침없이 떠나갔듯이 나의 아이들도 그렇게 우리의 곁을 떠나서 자기만의 새로운 가정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내 첫 아이가 중년의 나이40세가 된 세월, 그 동안에 새로이 태어난 사람들은 많기도 하였으며, 또한 40년 전에 알았던 많은 사람들이 나의 곁을 떠나가기도 하였다.
결혼식장에서 새신랑에게 나의 손을 넘겨주시던 아버지. 아직도 건강하시다. 건강하시어도 어쩐지 불안한 듯, 나의 미래를 바라보듯이 94세가 되신 아버지를 다시금 바라본다. 서산마루에 걸려있는 태양을 향한 안타까운 마음으로 아버지의 일생이 담겨진 그 모습을 보고있노라면, 우리에게 말해주는 듯 하다. ‘하루는 어떻게 마무리지으며, 내일은 어떻게 준비하는 것인지.....’. 저녁노을에 물든 구름 속으로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내 아이들의 모습도 떠오른다.
내가 나의 길을 불평도 하지 않고 살아간 것처럼, 나의 아이들도 자기들의 길을 가고 있다. 내가 부모님의 삶을 반쯤 떼어서 가지고 떠나와 나의 반석을 만들고 그 위에 내가 세운 나의 인생, 나의 운명과도 같은 삶. 망설임도 없이 내 아이들도 우리부부가 그동안 이루어놓은 삶을 반쯤 떼어서 가지고 간다. 행복한 마음으로 간다.
내가 그동안 간직하고 있던 내 아버지의 사랑도 얼마만큼 나누어 그 안에 담아 가지고 간다. 그리고 사랑을 자기의 자식들에게도 아낌없이 분배하면서 각자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모두 같은 방향을 향해서 가고 있다. 한 줄로 그렇게 이어져서 걸어간다.
첫아이야, 내가 너를 처음 만났던 날은 참으로 빛나는 아침이었지. 네 아이의 첫아이가 40세의 생일을 맞이하거든, 너도 부모를 생각해다오. 그리고 40년이라는 세월 속에서 얼마나 많은 일들이 이루어지며, 또 소멸되어지기도 하는 것인지, 그리고 저녁노을은 왜 또 그토록 아름다운지, 그 이유도 마침내 알게되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