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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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세계점령을 상상하며

2007-12-06 (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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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사는 신시내티 시내에 새 한국 식당이 개업했다. 이곳엔 다행히 두서너 개의 한국 식당이 있어서 한식을 즐기는 사람들의 많은 사랑을 받아왔다. 새 식당의 마케팅 전략은 다른 식당들과는 달리 고급화하는 것이다. 음식이 약간 비싼 대신 예술적 풍취를 담고, 실내장식은 모던하고 고급스러우며, 웨이터와 웨이트레스는 멋진 유니폼을 입고 있다. 한국 손님들의 반응은 “돌솥 비빔밥을 먹는데 그렇게까지 비싼 값을 치러야 하나” 이고, 미국인들의 반응은 “쿨!”이다.
우리 대학의 부설 프로그램에도 한국어 클래스가 생겨 내년부터 강의가 시작된다. 한인회가 주관하는 한국학교 외에 이 지역 대학 혹은 대학 부설 프로그램으로서는 처음이다. 이 성인 대상 코스는 다음과 같은 문구로 미국인들에게 홍보를 하고 있다.
“삼성 핸드폰, 현대 자동차, LG TV, 아시아의 폭력 영화, 지구 상 마지막 냉전지역, 태권도, 그리고 세계에서 가장 배우기 쉬운 문자를 지닌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배웁시다”
아마도 한류가 이제 미국 중서부를 덮치는 중인 것 같다. 캠퍼스에서 한국 영화 ‘고양이를 부탁해’를 상영한다는 포스터를 본 우리 학교 학생이 농담을 했다.
“와, 한국이 세계를 점령하는 거 아닌가요?”
한국이 세계를 점령한다? 그 말을 진정 미래의 사실로 믿고 기뻐하는 한국인들이 다수 있다는 얘기를 책에서도 읽고 직접 들은 적도 있다. 그들 중엔 그것이 이미 오래전부터 점지된 사실이라 믿는 사람들도 있다는 얘기도 들었다.
글쎄, 한국의 ‘반 만 년 역사’를 문자 그대로 믿는다면 한국의 세계 점령을 믿지 못할 이유도 없겠다. 조국이 세계로 뻗어가는 것을 보고 싶은 것은 애국의 자연적 산물이다. 그리고 조국을 그런 자긍심으로 평가하다 보면 오직 ‘나쁜 사람’들만 우리의 적이 된다. 언젠가 만화책에서 북한과 남한이 한 편이 되어 미국과 일본을 쳐부수는 얘기를 본 적이 있다. 한국인들에겐 아주 매력적인 애국 스토리다.
잠깐이나마 한국이 세계를 점령하는 즐거운 상상을 해보자. 어떻게 그 작은 나라가 세계를 점령할 수 있겠는가? 역사를 돌아보면 우선 제국을 건설하는 게 가장 일반적 케이스지만, 물리적으로 그건 쉽지 않을 것이다. 미국의 경우처럼 일종의 은밀한 제국을 건설한다고 상상하면 어떨까? 먼저 나라를 고도로 번영시킨 다음 지구상에 문화와 언어를 퍼뜨리는 경우다.
‘4분의 1만년’ 전의 고대 그리스도 그 한 예가 될 수 있다. 서기 전 500년에 시작된 아테네의 200년 민주주의는 기간도 짧고 그 규모도 작은 번영이었지만 아직도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아테네 이후 마케도니아(알렉산더 대왕 시절)와 로마 같은 비민주적 제국이 번성하면서 그리스 전통문화를 퍼뜨렸던 것이다. 그리스는 현재까지 동양과 서양 두 곳에 그 문화유산을 제공하고 있는 것이다.
중국이 곧 세계를 점령하지 않겠느냐는 의견들이 분분하다. 만약 중국이 세계를 점령한다면? 한류가 이미 아시아를 덮쳤다는 사실을 상기한다면, 그리스 문화가 로마제국에 의해 퍼뜨려진 것처럼 한국 문화도 중국의 세계 점령을 통해 지구를 점령한다고 상상해 볼 수 있다. 그래서 100년 후 무역과 미디아의 주 언어는 중국어지만, 문화를 대표하는 언어는 한국어가 되는 걸 상상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2004년 여름, 몽고의 수도 울란바토르에서 약 200 마일 떨어진 곳에서 한 몽고 젊은이와 한 자리에 앉게 되었다. 그는 관광학 전공 학생으로 영어를 전혀 할 줄 몰랐다. 나 역시 몽고말을 몇 마디밖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우린 한국어로 제법 대화다운 대화를 나눌 수가 있었다.
옆에서 미소 지으며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몽고 주재 한국인이 갑자기 활짝 웃으며 자랑스럽게 소리를 질렀다. “한국어! 국제어!”
내겐 결코 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지구의 정 반대되는 곳에서 만난 우리가 제3의 나라 말로 우정을 나누는 순간이었으니. 한 마디로 “쿨!”한 순간이었다.

한국과 미국
북켄터키 대학 전산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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