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뭇잎들이 황금색 옷 단장을 하고 마지막으로 떠날 채비를 하는 가을이다. 몇 년 전 미국 매거진에서 읽은 재미있는 글이 생각나 다시 떠올려본다.
태초에 하느님이 만물을 창조하시고 움직이는 동물들에게 먼저 몇 년씩 살 수 있는지 수명(壽命)을 정하셨다. 제일 먼저 당나귀, 개, 원숭이, 사람이 왔다. 하느님은 그들에게 모두 30년씩을 주겠다고 했다. 그때 제일 앞에 섰던 당나귀가 펄쩍 뛰면서 “아이쿠 하느님 너무 하십니다. 제 팔자는 아침부터 해 질 때까지 사람들의 짐을 나르느라 허리가 휘어지고 힘든데, 그렇게 오래 산다는 것은 형벌입니다. 제발 줄여주십시오.” “알았다. 그럼 18년 정도면 되겠느냐.”
두 번째로 개가 말했다. “하느님, 저는 하루 종일 뛰어 다니며 사람들에게 치사하게 애교를 부리며 좋아하는 척 해서 겨우 밥이라도 얻어먹지만 늙으면 한쪽 구석에서 구박이나 받는 신세이니 조금 더 줄여주십시오.” “오냐 알았다, 그럼 너는 12년으로 하자꾸나.”
그리고 세 번째로 원숭이가 왔다. “너는 항상 놀고만 있으니 오래 살아도 괜찮겠구나.” “아이구 하느님, 아니요. 저는 사람들을 웃기고 즐겁게 해주며 하루를 지내는데 글쎄 그게 쉬워보여도 자꾸 잊어버리고 가끔은 너무 힘들어서 가끔 속으로 울기도 한답니다.” “그래, 그러면 10년으로 하자꾸나.“
마지막으로 사람이 왔다. “너도 30년이 너무 많다고 생각하느냐?” 인간은 흥분해서 숨도 안 쉬고 말했다. “아니요 하느님. 우리는 과일나무도 심어 열매도 따야 하고 농사도 짓고 자식도 낳아 커지면 시집 장가도 보내야 하고 또 손자들이 자라는 것도 보고 싶고, 이 세상 좋은 것들 모두 보려면 30년은 어림도 없습니다.”
“너희는 왜 그리 욕심이 많으냐? 그래, 알았다. 그러면 개가 반납한 18년, 원숭이가 반납한 20년, 당나귀가 반납한 12년 중에 어떤 것을 원하느냐?” “모두 주십시오.” “원, 욕심도… 알았다.”
이렇게 떼를 써서 모아진 인간의 수명이 80년이 되었는데 요즘은 산 동물이 아닌 컴퓨터의 10년 수명까지 가져와 90까지 사는 이들이 많다고 한다.
그런데 처음 30년은 사람 원래의 수명이라 부모 밑에서 별 걱정 없이 잘 살다가, 그 다음 18년은 당나귀의 것이라 결혼해서 자식과 식구들을 등에 지고 다니는 것이라 한다. 그 다음 12년은 개의 것이라서 장성한 자식 눈치도 보며 살지만 개 팔자처럼 생활은 안정이 되고 편안하며, 마지막 20년(60~80세)은 원숭이의 것이라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머리를 긁으며 갸우뚱 거리다 속상해 어떨 때는 혼자 울기도 한다고 한다.
이것은 독일의 잘 알려진 전설 중의 하나인데 몇 년 전 여고 선배 한 분이 병환으로 고생하시다 돌아가시기 전에 하시던 말씀이 하도 간절해서 가슴에 울려온다. “혜란아, 나 정말 살고 싶어…” 나는 그 자리에서 눈물만 흘렸고 인간 능력의 한계와 죽음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하찮은 존재인가를 느꼈다.
많은 이들이 질병 또는 사고로 인해 제 수명을 다 하지 못하고 떠나기도 하는데 이때 마지막 벼랑에서 인간은 누구나 미치도록 삶에 집착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미 정해진 내 인생이라면 마지막 장까지 기다리지 말고 가끔은 혼자 조용히 앉아 살아 온 날들을 돌아보고 죽음, 만남, 이별 등을 곰곰이 생각하다 보면 새삼 인생의 소중함도 느끼게 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미래를 더욱 아름답게 설계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