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피니언] 미국 속의 한인노인

2007-10-01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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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창근(워싱톤지역 한인노인회연합회 회장)

한 나라의 성장척도를 정치발전, 경제발전에 둔다면 문명문화의 성장척도는 인간의 평균수명 연장에 둔다 하여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세계는 바야흐로 인간의 고령화에 따른 노후 사회복지문제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실정이다. UN은 이런 맥락에서 10월 1일을 세계 노인의 날로 제정하고 증폭되는 노인세대의 사회복지 문제에 대하여 국가 차원에서 적극 대처할 것을 호소하고 있다.
요즈음 신문지면이 좁다 하고 차지하는 고국의 혼탁상을 매일 읽으면서 우리가 살고 있는 미국의 현실과 비교하여 본다. 세계 선진대열에 진입 하였다, 경제강국으로 비약하였다는 등 우리 교포 앞에 나와 호언장담하는 고국의 고관대작이나 고국 내의 언론에 비치는 선진화, 세계화 등등을 읽고 있노라면 조국 떠나 이국땅에서 늙어온 주름진 얼굴에 흐르는 애수가 깊어짐을 막을 길 없다.
우리가 이곳 미국에 올 무렵인 60년, 70년대 한국은 허덕이는 국가경제의 보완책의 하나로 강제는 아니나 해외 이주를 권장, 종용하였었다. 그리고 이민 온 교포들의 송금은 한국경제 발전에 도움을 주었다는 엄연한 사실도 고국은 시인해야 하겠다. 더욱이 민주주의를 표방하면서 인간의 기본권인 개인의 재산을 억류하고, 1인당 300불에서, 70년 후반에는 1인당 1,000불 등, 제약된 금원만을 가지고 언어와 풍속이 판이한 이국땅에 가서 살게 하였던 지난날의 낙후된 정책을 실토하고 뉘우치는 말을 듣거나, 글로도 읽어 본 일이 없었다.
미국 속의 한인노인들은 쓰다 달다 말없이 인생의 재창출을 위한 삶의 터전을 개척하면서 내일의 꿈을 키워왔던 것이다. 직업도 식품점, 세탁업, 간이식당 등 비교적 말이 많이 사용되지 않고 육체적으로 충당할 수 있는 하급노동을 선택, 하루 14시간, 15시간씩 몸이 휘어지도록 일만을 되풀이 하면서 내일의 미국 속에 한민족 후세들의 꿈을 이루어온 자랑스러운 이민 개척자들인 것이다.
그리고 미국 땅에 코리안의 힘이 구축 되어가는 현실을 볼 수 있게 하고, 여기 저기 미국 실사회에 참여한 한인계가 정치, 사회, 문화 등등에 두각을 나타내 뉴스의 초점으로 부상할 때 우리 노인들은 보람 있는 결과에 감격 하면서도 무관심 속에 사라져가는 노인세대의 달랠 길 없는 노약을 실감하면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그런데 지상의 천국이라는 미국에 이변이 왔다. 복지축소라는 큰 이변, 이민으로 이룩한 미국이 이민을 반대하고 이민자에게 주어진 혜택을 축소해야 된다는 것이다. 나이 70이 넘은 노인들이 A, B, C 꼬부라진 영어를 배워야만 하는 현실이 처참하도록 힘들지만, 자신의 생명 연장수단으로 시민권을 취득하여야만 되는 처지이기에 삶을 위한 몸부림은 그리 좋아 보이지가 않는다.
지금 고국은 세계 경제강국이라고 호언하며 세계화를 외치고 있다. 그렇다면 60년, 70년대 고국 경제발전에 작은 도움이라도 되었고, 오늘의 미국 속에 한국을 빛낸 공을 인정하여야 옳지 않겠는가? 좋을 때는 내 민족이나, 쓸모없고 부담스러울 때는 타 민족인양 소외하는 것은 모국이라는 정서감에 큰 상처를 심는다는 것을 십분 고려해야 옳다고 본다.
이제는 자신을 위한 삶을 위하여 다시한번 피땀 흘려 ABC 와 투쟁하는, 미국 속에 한국문화를 창출 시켰던 한인노인들, 또한 미국 이민사에 한 장을 기록한 이 산 증인들에게 부닥친 애절한 고달픔을 누구에게 호소해야 옳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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