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종교인 칼람/ 시간

2007-09-18 (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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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민목사(아펜젤러내리연합감리교회)

시간은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에게 주신 소중한 선물이다. 그러나 그것은 선한 일에도 이용되고 악한 일에도 사용된다. 보람 있는 일을 위해 쓰여 지기도 하고 쓸데없이 낭비되기도 한다. 그러므로 시간에 대한 물음이 있어야 한다. 지금 나의 총총대는 바쁜 걸음 속에 목적지는 있는지...내가 지금 들어 선 곳에 길은 있는지...지금 흘리는 이 땀 속에 의미는 있는 것인지...만약 없다면 움켜잡았다고 여기는 성공은 다 손 안에 쥔 바람과 같을 뿐이다.

시편 기자는 말한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의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 90:12)라고 말이다. 즉 행복한 삶을 위해서는 먼저 우리 인생의 날수를 계산하는 지혜의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내 인생이 얼마나 남아 있는가를 계산하는 것은 공연히 쓸데없는 고민이 아니다. 시간을 헤아리면서 시간을 아끼는 지혜의 마음을 잃지 말아야 한다. 왜냐하면 자신의 남은 일들을 헤아려봄은 우리에게 창조적인 긴장을 가져다주기 때문이다.오늘을 사는 많은 현대인들은 속도의 덫에 걸려있는 것 같다. 우리는 원하는 것을 얻고 목표점에 이르고자 속도를 낸다. 이 속도가 우리로 우리 날 수 계수함을 잊게 만든다. 앞만 향하여 속력을 내라고 부추긴다. 얼마나 짧은 시간 안에 빨리 목적지에 도달하느냐가 최대의 관심인 세상이다. 빠르지 못하면 경쟁에서 밀리고 낙오된다는 것이 현대 사회의 수칙인 것이다. 인터넷 시대가 그렇고, 디지털 세상이 그렇다. 그러나 빠르게 달리는 데 몰두하다가 정작 중요한 삶의 풍요로움을 잃게 된다. 달리는 의지는 우리의 감각을 퇴화시키고 하나님의 뜻을 잃고 세파에
휩쓸려 버리게 한다.


바쁜 이민생활에서 휴가를 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꼭 시간이 없어서가 아니라 휴가를 갈 만큼 여유(마음과 돈 모두)가 없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아주 바쁘게 사는데 무척 익숙해져 있어 아무것도 하지 않고 보내는 시간에 대해 우리는 불안한 느낌을 갖는 사람들이 아닌가? 일 속에 묻혀 살면서 “좀 더 많이” “좀 더 높이” “좀 더 크게”를 목표로 뛰다 보면 아무 일도 않는 것에 대해 불안해한다. 심지어는 죄의식을 느낀다. “이렇게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지” “편안히 쉬고 있을 때가 아니지!” “할일이 얼마나 많은데...” 여하튼 일하기 위해 인생을 사는 것 같다. 그러나 좀 더 많이 획득하려고 버둥대지만 성취를 이루기커녕 능률 없이 헛수고가 많고 성취를 이룬다 해도 기껏해야 지극히 조금 밖에 못하지 않는가?

때로는 목적지에 고정된 시선을 자유롭게 하고 고속으로 치닫는 삶에 약간의 제동을 걸어보자. 일하는 시간만큼 “쉬며 생각하는” 시간도 중요하다. 빠른 판단을 위해 민첩하게 생각하는 시간도 필요하겠지만 느긋한 마음으로 느리게 생각하는 시간도 필요하며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울이며 홀로 기도하는 시간이 우리에겐 참으로 중요하다. 그리고 함께 즐거움을 만들며 가족들과 애정과 대화를 나누는 시간의 여분은 우리 인생에게 매우 소중하다. 부실한 인간관계 대신 친한 교우들이나 이웃과 함께 부담 없는 정담 속에 삶의 정서와 생각들을 서로 클릭(click)시키며 웃음을 나누는 시간의 여유를 가져 봄은 어떠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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