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피니언] 워스터 카운티

2007-09-10 (월) 12: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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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선우/ 변호사

체사피크 만을 건너 있는 델라웨어, 메릴랜드, 그리고 버지니아 반도, 그리하여 세 주의 이름 첫 부분을 따서 델마바(Delmava)라고 불리는 지역은 좀 특이한 면이 있다. 그 중 한 군은 ‘Worcester’ 라고 하는데 영국 식민지 시절 영국의 한 지명을 그대로 옮겼는지 엉뚱하게 ‘워스터’ 라고 발음된다. 우리 부부가 워스터 군의 군청 소재지인 스노우 힐과 관계를 갖기 시작한 게 약 2년이 넘었다. 부동산 브로커를 하는 아내의 회사에 적을 두고 있는 중개인 한 분이 워낙 사기로 계획했던 닭 공장을 안 사게 되자 아내에게 사보도록 권고를 했고, 워낙 농장 같은데 관심이 많은데다가 새로운 도전을 좋아하는 아내가 여러 번 조르는 바람에 덥석 사도록 허락했기 때문이다.
그 이유는 복합적이었다. 평생 돈 버는 재주가 없어 아내가 농원 갖기를 소원해오던 것을 만족시키지 못한 터에 닭 농장이라도 사게 하면 조금이라도 소원풀이가 될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또 닭 회사의 햇병아리를 받아 길러주면 들어오는 돈으로 인건비와 경비를 지불하고 모기지를 은행에 15년 붓다보면 15년 후에는 우리 땅이 된다는 계산도 작용했다. 특히 하와이 대학과 메릴랜드 대학 두 군데서나 좋게 말해서 영구직이 안 되어서, 또는 나쁘게 말하자면 쫓겨난 상태로 47세에나 변호사로 전직한 나에게 은퇴기금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도 농장 구입 결정의 요인 중 하나였을 것이다.
그러나 고생문이 훤히 열리게 된다. 우선 우리 집에서 농장까지 거리가 120마일 정도라 빨리 달려도 두 시간 반이 되는 것을 어떤 때는 한 주에도 몇 차례 왕래해야 하는 역마살이가 된다. 워낙 비즈니스 하고는 거리가 먼 나로서는 종업원이래야 세 명밖에 안 되지만 필요 물품 구입에서 갖가지 용역회사와의 연락 등 자질구레한 일이 허다한 농장 경영의 CEO는 아내로 간주하고 나는 그저 운전수 노릇을 자청할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믿을만한 사람을 발견하기가 어찌나 어려운지 그동안 사람들이 여러 번 바뀌었다.
우리 농장 앞에는 워스터 카운티 직영의 리쿼 스토어가 있는데 2천 평방피트의 면적임에도 월세는 800불이다. 우리 땅의 대부분은 산림보존지역이란 C-1 구역이나 농업용이란 A-1 구역인데 큰 길에 면한 일부는 상업용인 B-2인 반면 술가게가 있는 8에이커 정도의 땅은 경공업용인 M-1 구역이기 때문에 만약 군의 리쿼 스토어가 우리 땅에서 이사를 가기라도 하면 그나마도 월세가 없어질 판국이라서 최근에 그 부분의 지역 지정을 B-2로 바꾸어 달라고 워스터 군에 신청했었다. 그에 대한 군 정부 계획위원회(Planning Commission)의 공청회가 그저께 열렸다. 위원장을 포함한 7명의 위원들 앞에서 우리 땅 앞쪽에 맥도날드 등 상업구역이 되었기에 우리 땅도 역시 B-2 구역이 되어야 하는 당위성을 개진했다. 위원들의 질문에 계획국장과 부국장 등 모든 실무진들이 우리의 신청을 승인해야 한다고 역설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성 위원장과 또 하나의 여성 위원은 우리가 몇 년 후에 있을 군 전체의 구역 재조정 때까지 기다리지 않고 왜 지금 신청하느냐를 힐문조로 따지기 시작했기에 아마 실패로 끝날 것이라 짐작되었다. 그러나 한 위원이 우리 신청에 근거가 있다면서 승인하자는 동의안을 냈지만 위원장이 계속 딴소리를 하는 바람에 위원회의 분위기가 어색하게 되었지만 결국 표결에 붙인 결과 4대 3으로 우리 신청을 승인하는 결정이 났다. 그러나 옥상옥이랄까 계획위원회의 결정은 군 전체위원회에 송부되어 그곳에서 최종 결론이 나오게 된다. 불리한 결정이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그러면서 농장 구입을 허락한 내 자신이 믿음의 부족으로 그런 결정을 한 것이 아닌지 자괴하는 마음이 들었다. 예수께서 “너희는 먼저 그(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필요한 의식주)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태 6: 33)라고 약속하신 데 대한 철저한 믿음이 있었다면 농장 구입에 뒤따른 수없는 두통거리를 면할 수 있었을 터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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